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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 정호승 :: 2007년 05월 11일 14시 22분
사랑한다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전경린의 소설 '황진이'에 보면
이처럼 젊은 송장 하나가 사랑에 묶여
떠내려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구슬프게 비내리는 처연한 상여길에
못 다 이룬 사랑에 발 묵인 슬픈 상여를
자신의 속곳을 기꺼이 내어
상한 넋을 어루고 달래 저승길로
훠어이 떠내려 보낸다.
사촌동생 :: 2007년 03월 29일 15시 56분
내가 어렸을 때 여섯 명의 이모가 있었다.
첫째, 셋째, 넷째이모, ... 그리고 막내이모.
둘째 이모는 우리 엄마인 셈이다.
막내이모는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 바쁘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이내 컴퓨터가 잘 안된다고 또는 한글 워드에서 뭔가 잘 안된다고 물어보곤 했다.
어제도 그렇게 바쁘냐는 물음의 전화가 걸려왔다.
늘 그랬듯이 이모에게 나는 한번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는 그런 조카다.
나는 또 뭔가 잘 안되는게 있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없이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적지 않은 떨림이 섞인 목소리에 영돈이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말이 실려왔다.
영돈이는 큰 이모의 막내아들이고, 내 어린시절 향수와 같은 추억을 함께한 사촌동생이다.
엄마가 한참 뇌질환 지병으로 누워계시던 시절, 큰 이모도 같은 병으로 쓰러지셨고,
뒤이어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엄마도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셨다.
어찌보면 영돈이와 나는 비슷한 경험의 소유와 비슷한 처지여서 좀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다쳤냐는 나의 물음은 더이상 소용없는 질문이 되어버리고,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한마디로 되돌아왔다.
그 순간 나의 모든 바쁜 일정은 그 효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다음날 저녁 시간을 택해 나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먼저 상주로 자리잡고 있는 형이 나온다.
눈물이 났다. 형이 손에 붙들려 조문을 마치고, 옆의 하객실로 갔다.
방의 한쪽 구석에 거무잡잡한 피부와 깡 마르고 주름진 얼굴의 이모부가 계시다.
서러움과 슬픔과 측은함과 억울함과 허무와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린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시 이모부를 끌어안고 울먹였다.
흐르던 눈물이 멎을 때 쯤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런 멍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으로 그날 밤과 새벽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뤘다.
조문을 하면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편안하게 하나님의 품안에 가기를 기도드렸었는데,
한 1년전부터 제수씨와 함께 성당에 다녔고, 영성체도 받았다고 한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어 화장터로 향했다. 제수씨의 결정에 따라 화장한 후 납골하기로 했다고 한다.
관이 그 뜨거운 불 속으로 아스라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의 세상이 무너질 듯 슬픈 이별을 택해야 하는 식구들의 힘겨움도 처음이다.
몇 번이나 실신하기를 반복하는 제수씨도, 땅바닥에 주저않은 채 힘겨운 눈물을 쏟아내는 이모부의 모습도,
주변의 모든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의 모습들 모두 힘겨움의 연속이다.
그런 가운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내 자신도 역시 힘들기는 매 한가지였다.
나는 이러한 감정의 풍경들을 뒤로 한 채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라섰다.
이제 갓 서른인 동생이 그렇게 갔다.
언제 부턴가 바빠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진 녀석이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 뭐하나, 죽으면 끝인걸...' 이라는 말이 입에 붙은 듯 떠들면서도
나는 또 하루를 이렇게 바쁘게 살고있다.
A Letter :: 2007년 03월 22일 18시 20분

어느날 부터 나는 한 아이의 후원자가 되었다.
어떠한 준비나 계획, 마음가짐 없이 그렇게 후원자가 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나의 의지만으로 그냥 되는 것이 아닌 줄은 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채로 몇 달이나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한통의 편지가 왔다.
낯선 나라의 전혀 모르는 언어가 이렇게 영어로 번역되어 온 것이다.
Dear sponsor Kyung Ho Lim,나는 아직도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것 같다.
Greetings to you for New year. Thank you for becoming my sponser.
How are you? I am well. My parents and siblings are all well. We are two sisters and one brother. My father pulls rickshare van. I attend at the project everyday. These I learn alphabets, songs, rhymes, prayer and take nutritions foods. We had celebrated pre-Christmas program in the project. I am very happy getting gifts from the project for christmas. How is your country like? Our country is nice to look at. I will pray for you. Please pray for me too. Take care. Bye.
From,
Teacher on be half of Shefali
Translater-Sukla
우선 몇가지 건네지 말아야 할 내용들에 대한 제약이 있고, 또 영어를 표현 수단으로 한다는 것 때문에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내가 진정한 마음으로 이 어린 아이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여러모로 어렵기만 하다.
심지어 처음에 안내 받았던 이 아이의 사진과 자료들 조차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무책임 한 거 같아서 답답함이 밀려온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나마 얼마 안되는 재정적인 지원뿐인데 말이다... ㅡ.ㅡ
섬 :: 2007년 03월 21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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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안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훌쩍 도망쳐 버린 그 곳 섬이 몇개나 되었을까... 그래 그렇게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 몇개나 되었을까... 이젠 뱃길 재촉하는 뱃고동 소리의 부둣가에서 섬을 향한 그 바닷길에 두 발 얹지 않으리... |
파도 :: 2006년 11월 16일 15시 04분
꼿꼿이 쳐들고 온 머리부터를 모래톱에 처박고
온몸을 양파껍질처럼 말면서 곤두박질치고
울부짖는 그대
멀고 먼 세상에서 흰 거품 빼어문 채 내내
사랑하고 악다구니 쓰며
줄기차게 살아 온
그 삶을 후회하는가
<곽재구의 포구기행>에 나오는 어느 시인의 파도라는 제목의 시다.
세찬 파도 처럼 밀려들어온 단어들의 글밭에서 이미지가 영글고
잘익은 이미지가 가슴에 부딪친다.
그리고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을 만큼의 소리를 낸다.
나는 고개가 숙연해 진다.
사랑하고 악다구니 쓰며 줄기차게 살아도 후회할 수 있는 일인데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면 후회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