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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과 글과 이야기 그리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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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나의 삶</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8 Mar 2010 11:42: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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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과 글과 이야기 그리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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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나의 삶</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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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대강 사업 저지 캠페인 홍보 만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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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그저 들리는 이야기들로만 4대강 사업에 소극적이나마 반대해 왔습니다.&lt;BR&gt;그런데 이제 그저 막연하게 드는 느낌으로 반대하기 보다는 제대로 알고 반대하는게 좋을 듯하여&lt;BR&gt;만화로 보기 쉽게 된 자료 하나를 퍼 나릅니다.&lt;BR&gt;&lt;BR&gt;&lt;BR&gt;- 원본 출처 &lt;a href=&quot;http://save4rivers.blogspot.com/&quot;&gt;&lt;U&gt;&lt;FONT color=#810081&gt;http://save4rivers.blogspot.com/&lt;/FONT&gt;&lt;/U&gt;&lt;/a&gt;&lt;BR&gt;- 다음 아고라 &amp;nbsp;반대서명 운동 &lt;a href=&quot;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87961&quot;  target=_blank&gt;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87961&lt;/a&gt;&lt;BR&gt;&lt;BR&gt;&lt;IMG id=BLOGGER_PHOTO_ID_5443941322898232386 style=&quot;DISPLAY: block; MARGIN: 0px auto 10px; WIDTH: 283px; CURSOR: hand; HEIGHT: 400px; TEXT-ALIGN: center&quot; alt=&quot;&quot; src=&quot;http://4.bp.blogspot.com/_mXH_l6XGWBU/S4zDyjlrVEI/AAAAAAAAAFw/beWNXjLekI4/s400/1_3+copy.jpg&quot; border=0&gt;&lt;BR&gt;&lt;IMG id=BLOGGER_PHOTO_ID_5442975195903358162 style=&quot;DISPLAY: block; MARGIN: 0px auto 10px; WIDTH: 283px; CURSOR: hand; HEIGHT: 400px; TEXT-ALIGN: center&quot; alt=&quot;&quot; src=&quot;http://2.bp.blogspot.com/_mXH_l6XGWBU/S4lVGkEU9NI/AAAAAAAAAFg/flX5YVIueic/s400/2.jpg&quot; border=0&gt;&lt;BR&gt;&lt;IMG id=BLOGGER_PHOTO_ID_5442975186632261506 style=&quot;DISPLAY: block; MARGIN: 0px auto 10px; WIDTH: 283px; CURSOR: hand; HEIGHT: 400px; TEXT-ALIGN: center&quot; alt=&quot;&quot; src=&quot;http://3.bp.blogspot.com/_mXH_l6XGWBU/S4lVGBh7P4I/AAAAAAAAAFY/roPAjTqfN_Q/s400/3+copy.jpg&quot; border=0&gt;&lt;BR&gt;&lt;IMG id=BLOGGER_PHOTO_ID_5442975169898092258 style=&quot;DISPLAY: block; MARGIN: 0px auto 10px; WIDTH: 283px; CURSOR: hand; HEIGHT: 400px; TEXT-ALIGN: center&quot; alt=&quot;&quot; src=&quot;http://4.bp.blogspot.com/_mXH_l6XGWBU/S4lVFDMMFuI/AAAAAAAAAFQ/lEgxfHDAdaU/s400/4+copy.jpg&quot; border=0&gt;&lt;BR&gt;</description>
			<category>일상을말하다</category>
			<category>4대강</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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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Mar 2010 11:27: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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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0년 어머니 기일 연미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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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요사이 어머니 기일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느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lt;BR&gt;갑자기 지난 금요일 세미나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를 괜히 했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gt;(서구식 의학/의료술을 비판하려다가 나온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10년동안 아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lt;BR&gt;대체의학 일 수도 근거없는 민간요법일 수도 있지만 음식이나 환경을 바꿔서, &#039;자연으로 부터 몸을 치유한다&#039;는 그런 성공사례들을 볼 때면 아직도 귀가 솔깃하다.)&lt;BR&gt;&lt;BR&gt;여하튼 정월 대보름이기도 한 오늘, 아버지와 큰누나와 조카녀석과 넷이서 어머니 기일 미사를 드렸다.&lt;BR&gt;&lt;BR&gt;지금 우리 동네는 재개발이 한참이라 달동네였던 비탈진 동네는 이제 흙먼지 가득한 민둥산으로 다 깎여내려가고&lt;BR&gt;그 차에 오랜 동안 언덕배기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성당도 대로변 길가의 임시 건물로 옮겨졌다.&lt;BR&gt;어머니 기일이나 되야 찾아오는 우리동네 성당...&lt;BR&gt;예전에도 그랬지만 먼 시골의 개척교회 처럼 규모도 작고 교인들도 적고, 그러니 교회 살림도 무척이나 어려워 보이고...&lt;BR&gt;게다가 나의 어린시절과 어머니와의 기억을 뗄 수가 없어서 인지 아직까지도 서글픈 느낌 한가득이다.&lt;BR&gt;중요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이렇게 무거워 지는 일이 되어 버리는게 싫은데 아직까지는 못 벗어난 것 같다.&lt;BR&gt;내게 필요한 건 뭔가 가볍게 타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와 거기서 부터 우러나오는 유머러스한 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lt;BR&gt;오늘 신부님 말씀 중에 김연아의 피겨 우승과 관련한 얘기가 있었다. 김연아 선수가 우승을 일궈내기 위해 고통과 상처의 증거로 베어있는 그 발에 관한 얘기. 결국 최고 영광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런 엄청난 고통들을 다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상투적인 말에 금방 식상했다가도 1시간의 미사가 꽤나 지겨웠을 9살 조카녀석이 그 말에 귀가 솔깃해서 딴청 안피우고 신부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뭐 그렇다.</description>
			<category>우리가족이야기</category>
			<category>성당</category>
			<category>어머니기일</category>
			<category>연미사</category>
			<category>제사</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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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8 Feb 2010 23:16: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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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괴물 같은 느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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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방문객 수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뜸했더니 참으로 솔직한 방문객 수를 보여주는 블로그가 됐다.&lt;BR&gt;자기 조차 들르지 않는 블로그...&lt;BR&gt;가끔은 이런 블로그를 굳이 왜 돈들여 가며 운영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lt;BR&gt;결국 내가 만들고 시작했어도 그것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lt;BR&gt;좀 더 가볍게 타고 넘어가도 되련만, 언제나 무겁게 생각하는 몹쓸 버릇...&lt;BR&gt;&lt;BR&gt;끊임없이 주체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가는 것을 발견하는 &#039;나&#039;라는 주체...&lt;BR&gt;그런 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한동안 버려지고 방치된 블로그가 되어 버렸다.&lt;BR&gt;&lt;BR&gt;뭔가 공부를 한답시고 이 책 저 책 참 많이도 기웃거렸다.&lt;BR&gt;그런데 어느날 문득 나 밖의 내가 &#039;공부 한답시고 하는 나&#039;를 본다.&lt;BR&gt;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느낌은 무슨 &#039;기생 동물&#039; 같다.&lt;BR&gt;뭔가 안정적인 영양 공급처에 기생하여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만 있는 괴물 같은...&lt;BR&gt;&lt;BR&gt;왠지 낯 뜨겁다.&lt;BR&gt;&#039;앎과 삶이 일치하는 공부&#039;를 외치면서도, 하나 하나의 앎만이 더해지는 삶이란 참으로 괴로울 것이다.&lt;BR&gt;마치 너무나 또렷하고 왕성한 기억 능력으로 인해 하나도 망각하지 못한채 모든 일상을 빼곡히 기억하는 정신과 신체를 지닌 삶과도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잊을 줄도 알아야 건강하다고 하건만...&lt;BR&gt;&lt;BR&gt;차분하게 드는 생각은 그동안 주워담은 것들 중 하나 하나 내려놓으면서 가야할 것이라는 것...&lt;BR&gt;소화능력을 상실한 채 먹기만 했던 일부 음식들은 적당히 토해내고, 흐려지고 구멍난 기억들의 일부는 다시 꿰매고...&lt;BR&gt;무엇보다 건강한 신체를 지니기 위한 실제적인 움직임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lt;BR&gt;&lt;BR&gt;어쩌다 보니 전형적인 반성형 일기 쓰기 같은 글이 되어버렸지만,&lt;BR&gt;정말 이게 최근에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다... 쩝.</description>
			<category>일상을말하다</category>
			<category>나</category>
			<category>망각</category>
			<category>공부</category>
			<category>괴물</category>
			<category>블로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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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삶</category>
			<category>일기</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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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Feb 2010 16:45: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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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과 노제에 다녀와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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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푸지게 늦잠을 자고나서 맞이하는 주말 아침.&lt;BR&gt;여느 일상과는 달리 유난히 추운 겨울울 나의 몸과 함께 잘 견디어 주고 있는 옷가지들을 깨끗하게 빨아주어야 겠다고 생각한&amp;nbsp; 날입니다.&lt;BR&gt;빨래통에 겹겹이 쌓인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돌려놓고는, 따끈한 사골국물과 밥으로 고픈 배를 채우며 TV를 켰습니다. 뉴스에서 용산 철거민들의 장례식이 355일 만에 치뤄진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lt;BR&gt;&lt;BR&gt;작년 이 맘 때 YTN 동영상으로 용산 철거민들을 과잉 진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현장을 지켜보면서, 억울하고 분한 감정으로 잠을 못 이루었던 생각이 납니다.&amp;nbsp; 그런 분하고 억울하고 서글픈 감정들을 담고 있는 그 일이 제게는 그저 마음 뿐이었고, 그 참사 현장을 그저 동영상이나 사진 속의 이미지이거나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맞이하는 &#039;움직이는 풍경&#039;에 지나지 않게 대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이 일어납니다. 반성은 곧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lt;BR&gt;&lt;BR&gt;세탁기에서 빨래를 마쳤다는 상쾌한 신호음을 보내주자, 얼른 빨래를 널어놓고는 현장을 향해 나갑니다.&lt;BR&gt;신용산 역에서 내려 용산참사 현장으로 가보니, 이미 장례식이 끝난 듯 한가로웠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서울역광장에서 범국민장으로 치뤄진다고 들었던 것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lt;BR&gt;&lt;BR&gt;서울역 광장에 도착하니 영결식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가고 있었습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066150346.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서글픈 단조의 민중가요, 수많은 깃발들과 함께 모인 사람들 &#039;움직이는 풍경&#039; 속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과 감각 전체로 맞이하는 현장의 느낌은 참으로 달랐습니다. 무언가 생각이 발동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나왔고,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 처럼 큰 슬픔의 정서가 이따금씩 훽하고 밀려오곤 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039;갇힘&#039;에서 발동하는 것일테지만, 제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137846429.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현장에서 수유너머R 식구들도 만났습니다. 약속도 없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렇게 만나지니 반가웠고, 슬픔의 정서도 금새 잊어버렸습니다.&lt;BR&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019966658.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다섯 분의 영정들을 모두 영구차에 모시자. 노제를 위해 용산참사 현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lt;BR&gt;영구차 뒤를 이어 만장들이 따르고, 그 뒤에 깃발과 추모행렬이 길게 이어졌습니다.&lt;BR&gt;행렬이 시작될 때쯤 내릴 것 같았던 눈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lt;BR&gt;왠지 모르겠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또 하나의 서글픈 풍경이 되었습니다. &lt;BR&gt;내 마음 때문이겠지만 눈송이 들이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울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lt;BR&gt;&lt;BR&gt;용산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걸어서 갈 생각도 해보지 못하는 길을 함께 가니 갈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차량들과 행렬이 뒤섞여 중간에 자주 막히고 끊기고 하는 문제들이 있었는지, 추위에 떨면서 힘겹게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걸어갔습니다. 그래도 가는 도중 수유너머R의 선생님 한 분과 인사도 나누고 안면도 트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거의 도착할 때쯤 갑자기 행렬이 분주해지고 어수선 하게 된 사이 흩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연락처도 없고 해서 그냥 묵묵히 혼자서 가기로 했습니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182098145.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참사 현장에 무대가 마련되고 몇가지 순서에 따라 노제가 진행이 되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315416220.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만장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었는데, 현장에 나오니 이렇게 하나하나 다 볼 수 있었습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369156948.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추모 행렬은 꽤나 길었습니다. 도로 위가 아니어도, 보도블럭위에선 사람들도 조용히 노제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lt;BR&gt;오후 5시가 넘어서 겨우 참사 현장에 올 수 있었으니, 꽤나 긴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lt;BR&gt;오랜 시간을 추위에 떨며 걸어왔더니, 배도 고프고 몸도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lt;BR&gt;너무 내 몸을 대책 없이 힘들게 내버려 두진 않았나 하는 생각과 의식을 경건히 치뤄야 한다는 생각이 싸우기 시작했지만,&lt;BR&gt;몸이 먼저였습니다. 길건너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뜨거운 국물로 언 몸을 녹이고 다시 왔습니다.&lt;BR&gt;&lt;BR&gt;제법 굵은 눈이 수북히 쌓여가는 가운데 유가족의 마지막 인사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lt;BR&gt;만신의 몸을 빌어 고인이 했다던 말이 &quot;추워~ 추워~&quot;라는 말씀을 전할 때 눈물이 왈콱 쏟아졌습니다.&lt;BR&gt;아... 정말 얼마나 추웠을까요... 그 추운 겨울, 망루 속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며, 함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마지막 남은 보루를 지키기 위해 그 차가운 최루액을 무자비하게 살포하는 것을 다 견디며 싸우다가 결국 불에 타 죽고말았던... &lt;BR&gt;그렇게 학살과 다름 없어 보이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도,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고인의 시체를 유린하여 부검하고, 냉동고에 지금껏 갇혀 있다가 이제서야 3일만에 치뤄져야 하는 장례를 치루게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눈물 겨웠습니다.&lt;BR&gt;펑펑 내리는 눈과 함께 한참 동안이나 주룩주룩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lt;BR&gt;&lt;BR&gt;그렇게 크게 울고 나니, 이제 모란공원 장지로 향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10대의 버스에 유가족과 풍물패와 추모객들 등등 나누어 타고 출발을 한다고... 노제는 거기서 그렇게 마무리 되고, 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lt;BR&gt;&lt;BR&gt;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니, 아주 슬픈 꿈을 꾼 것 같습니다.&lt;BR&gt;슬픔의 정서가 가득했던 꿈...&lt;BR&gt;죄송했던 마음도 함께 떠나 보내고, 억울하고 슬픈 감정도 어쩐지 정리가 될 것 같았는데,&lt;BR&gt;그러면 몸도 마음도 개운할 것 같았는데...&lt;BR&gt;그냥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인지 주말과 휴일 내내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lt;BR&gt;아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lt;BR&gt;&lt;BR&gt;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lt;BR&gt;그리고 이제 슬픈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lt;BR&gt;&lt;BR&gt;이제 돌아가신 다섯 분 모두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일상을말하다</category>
			<category>슬픈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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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용산</category>
			<category>용산참사</category>
			<category>용산참사범국민장</category>
			<category>장례식</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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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h7777.net/tt/entry/%EC%9A%A9%EC%82%B0%EC%B0%B8%EC%82%AC-%ED%9D%AC%EC%83%9D%EC%9E%90-%EC%98%81%EA%B2%B0%EC%8B%9D%EA%B3%BC-%EB%85%B8%EC%A0%9C%EC%97%90-%EB%8B%A4%EB%85%80%EC%99%80%EC%84%9C#entry295comment</comments>
			<pubDate>Mon, 11 Jan 2010 18:34: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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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AT Book 8 - 비극의 탄생과 Over the Duality</title>
			<link>http://kh7777.net/tt/entry/MAAT-Book-8</link>
			<description>&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395941290.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50&quot; /&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ff3399 size=2&gt;Over the Duality : Nietzsche&#039;s The Birth of Tragedy&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
&lt;BLOCKQUOTE&gt;After I have stayed in China for a year, finally I am back. How have you been? &lt;BR&gt;Fortunately, Seoul is much cooler than Tianjin, China, and I am enjoying the cool weather now. What a different experience and perception! Our feeling, perception, understanding, even interest can be different and various according to the space and the time. Did I tell you that there are wide range prices of cigarettes in China, from 200 won to 20000 won per pack? To choose a certain cigarette is not simply a problem of taste, but complicating causes such as an issue of status there. Well, we cannot just divide some phenomena or problems into two divisions, but we usually believe that there are overall big two divisions, like body and mind, man and women, etc. Here, this beautiful summer time, we will think about the dichotomies in our world and the resolving ways. As we do every summer, we will enjoy our cool environment reading, digging and discovering precious our own jewels. &lt;BR&gt;&lt;BR&gt;Ps. For the new comers: We call our concentration on the text ‘dense reading’ that does not mean the full understanding of the text (in fact, it is impossible), but means ‘my own understanding of it, or of some tiny part of it.’ &lt;BR&gt;&lt;BR&gt;2009. 6. 26 –dr.yoon&lt;/BLOCKQUOTE&gt;지도교수님이 중국에서 1년간의 연구년을 마치고 돌아오신 후 다시 시작했던 랩 세미나.&lt;BR&gt;친히 위와 같은 서문으로 장식 된 MAAT Book 8에서는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 &amp;lt;비극의 탄생&amp;gt;을 통해 니체와 만날 수 있었다.&lt;BR&gt;서문의 요지는 이렇다. 200원 부터 2만원에 달하는 담배 한갑을 선택하는 문제 조차도 &amp;nbsp;담배의 품질이나 맛과 향, 또는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간단하게 선택되지 않고,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때문에 복잡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빗대어 사람들이 대부분 몸과 마음, 남과 여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가능하다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현상이나 문제가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삶에 관해서는 항상 이중적이고, 모순과 명쾌함이 공존하는 것임에 니체의 &amp;lt;비극의 탄생&amp;gt;을 통해 그 이중적인 상황들을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lt;BR&gt;&lt;BR&gt;여름 방학에 공부한 책을 이제와서 다시 보려니 도저히 엄두는 나지 않고, 다만 비록 부정확할 지라도 몇가지 남아있는 기억의 흔적들을 모아서 나열해 보자면...&lt;BR&gt;&lt;BR&gt;디오니소스 적인 것 아폴론적인 것 양극화 된 구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안으로 파고드는...&lt;BR&gt;그러기 위해 어느 한 쪽에서 자기 본성을 완전히 무장해제 한 채 &#039;전치&#039; 또는 &#039;위장&#039;의 방법으로 그래야 하는...&lt;BR&gt;이 이중성의 너머에 인간 존재이든, 삶이든 예술이든 탐구할 만한 무구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 정도?&lt;BR&gt;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에 아폴론 적인 것과 디오니소스 적인 것을 대립시키고 말면, 명쾌할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 더군다나 예술은 더욱 더 그렇지 않다는 것. 학문 마저도 그렇게 항상 명쾌함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 이것은&amp;nbsp; 주체, 실체, 실재(the real)도 마찬가지이다.&lt;BR&gt;&lt;BR&gt;어쨎든 이 책은 그리스 비극을 가지고 와서 논하는 예술에 관한 책인 것은 분명하고, 예술, 학문 그것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와도 같은 것임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lt;BR&gt;&lt;BR&gt;그래서 주의 깊게 기억해 두려는 문장이 있다. &lt;BR&gt;니체는 &quot;자기 비판의 시도&quot;에서 1871년에 나온 자신의 저서 &amp;lt;비극의 탄생&amp;gt;을 어떤 &#039;발칙한&#039; 책으로 평가하면서 쓴 대목인데, 하지만 니체는 곧바로 보다 &#039;냉철한 눈&#039;을 가지고 다시 읽혀질 것을 기대한다.&lt;BR&gt;&lt;FONT color=#d41a01&gt;&quot;예술가의 관점에서 학문을 보기 위해서, 그렇지만 삶의 관점에서도 예술을 보기 위해서&quot;&lt;/FONT&gt; 말이다.&lt;BR&gt;내게는 이 문장이 학제간 연구로써 예술과 학문과 삶을 대하는 연구자의 태도로써도 다가 온다.</description>
			<category>MAAT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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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니체</category>
			<category>디오니소스</category>
			<category>비극의탄생</category>
			<category>삶</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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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예술</category>
			<category>이중성</category>
			<category>MAAT</category>
			<category>MAAT Book</category>
			<category>MAAT Seminar</category>
			<category>The Birth of Tragedy</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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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Dec 2009 22:43: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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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중권이 공들여 엮은 책,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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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hreview ttbReview&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lt;SPAN class=&quot;item vcard&quot;&gt;&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2822&amp;amp;ttbkey=ttbkh77771636001&amp;amp;paperid=3287165&quot;  target=_blank&gt;&lt;IMG alt=미디어아트 hspace=5 src=&quot;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58622822_1.jpg&quot; align=left border=0&gt;&lt;/a&gt;&lt;A class=&quot;fn url&quot; style=&quot;FONT-WEIGHT: bold; COLOR: #369; TEXT-DECORATION: none&quot;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2822&amp;amp;ttbkey=ttbkh77771636001&amp;amp;paperid=3287165&quot; target=_blank&gt;미디어아트&lt;/A&gt; - &lt;IMG alt=8점 src=&quot;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8.gif&quot; border=0&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818181&quot;&gt;진중권 엮음/휴머니스트&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SPAN class=description&gt;진중권이 지은 책이 아니라 단지 엮음에 그친것으로 보고 &#039;살짝 낚였다&#039;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lt;BR&gt;하지만 진중권스러운 &#039;스타일&#039;이 조금은 스며들어 있다. 책의 서두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lt;BR&gt;진중권은 묻는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하던 &quot;기술 복제 시대&quot;의 예술 이후, 디지털 혁명을 지나 &quot;기술합성 시대&quot;인 지금의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고..&lt;BR&gt;그에 대한 성찰로 로이 애스콧, 사이먼 페니, 제프리 쇼와 같은 미디어아트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는 주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주로 미디어아트에 관련된 쓸만한 책들은 대부분 영어로된 책들이다. 그러니 영어가 너무나 힘겨운 나에겐 한글로 번역된 내용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lt;BR&gt;&lt;BR&gt;첨단 기술과 예술의 교차 지점에 있어서, 현상적으로는 하이브리드(hybrid)들에 대해서, 학문적이면서 실천적으로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가 절실히 요구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미디어아트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에 관해서는 낮은 수준에서의 상호작용과 좀 더 자율성 획득에 의한 진화된 상호작용에 관한 역설들을 엿볼 수 있고, 인간과 기계(또는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에서의 그 간극(in-between)에서 발생하는 어떤 것들,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도 보았다.&lt;BR&gt;&lt;BR&gt;후반 부에는 인공생명(Aritificial Life)에 관련된 미디어아트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움을 더한다.&lt;BR&gt;물론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아트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나에게도 그리 쉽지는 않다.&lt;BR&gt;하지만 미디어아트와 관련된 어떤 맥락(context)을 파악할 정도는 되고, 좀 더 나아가 예술에 있어서 기존의 재현(representation)체계를 넘어 직접적인 예술 실천(artistic practice)을 행할 수 있는 예술 분야 중의 하나임을 각인시켜 줄 수&amp;nbsp; 있을 것으로 보인다. &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 class=&quot;reviewer vcard&quot;&gt;&lt;SPAN class=&quot;fn url&quot;&gt;http://www.kh7777.net/tt&lt;/SPAN&gt;&lt;/SPAN&gt;&lt;SPAN class=dtreviewed title=2009-12-23T04:21:00&gt;2009-12-23T04:21:00&lt;/SPAN&gt;&lt;SPAN class=version&gt;0.3&lt;/SPAN&gt;&lt;SPAN class=rating&gt;&lt;SPAN class=value&gt;8&lt;/SPAN&gt;&lt;SPAN class=best&gt;10&lt;/SPAN&gt;&lt;/SPAN&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미디어아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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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HCI</category>
			<category>상호작용성</category>
			<category>예술의최전선</category>
			<category>인공생명</category>
			<category>진중권</category>
			<category>MAAT</category>
			<category>Media Art</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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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3 Dec 2009 13:21: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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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디어아트 전공자로서 자크 랑시에르의 조언을 구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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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자크 랑시에르의 &lt;STRONG&gt;&lt;FONT size=2&gt;&amp;lt;감성의 분할&amp;gt;&lt;/FONT&gt;&lt;/STRONG&gt;의 3장에 이런 제목의 글이 있다.&lt;BR&gt;&lt;STRONG&gt;&#039;기계 예술들에 대하여 그리고 익명인들의 미학적/과학적 지위 향상에 대하여&#039;&lt;BR&gt;&lt;/STRONG&gt;&lt;BR&gt;여기서 언급되는 기계 예술이란 사진과 영화를 말하고, 익명인이란 어떤 민주적인 지위를 획득한 &#039;미학적 주체&#039;라고 보여지지만 나는 이를 미디어아트의 상황에도 적용하여 생각해 보려한다.&lt;BR&gt;&lt;BR&gt;&lt;FONT color=#008000&gt;기계 예술들이 대중들에게, 보다 정확히 말해 익명의 개인에게 가시성을 줄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들은 우선 예술들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우선 복제 또는 보급의 기술들과 다른 것으로서 실행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누구에게라도 가시성을 주는 것 그리고 사진과 영화가 예술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동일한 원리다. 우리는 정식을 뒤집을 수도 있다. 그러한 주제의 기록이 하나의 예술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익명인이 예술적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익명적인 것이 예술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특유한 아름다움의 운반자이기도 하다는 것, 그것은 미학적 예술 체제의 고유한 특징이다. (...) 미학적 예술 체제, 이것은 우선 재현의 체계의 붕괴, 다시 말해서 주제들의 품격이 재현의 장르들의 품격(귀족들을 위한 비극,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희극; 역사화 대 풍속화 등)을 지배하던 어떤 체계의 붕괴다. 재현의 체계는, 장르들과 더불어, 주제의 비천함 또는 고상함에 알맞은 표현 형태들과 상황들을 규정했다. 미학적 예술 체제는 주제와 재현 양식 사이의 이 상관항을 파괴한다.(...) 기술적 행동 방식─그것이 단어들의 사용이건 또는 카메라의 사용이건─이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서 규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주제가 예술에 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 사진 예술의 지위를 확보한 것은 지극히 순수한 주제들과 회화주의의 연조 효과들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평범함(스티글리츠의 &amp;lt;3등 선실&amp;gt;의 이주자들, 폴 스트랜드 또는 워커 에반스의 정면초상 사진들)의 인수assomption다. 한편으로, 기술 혁명은 미학 혁명 이후에 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학 혁명은 무엇보다도─사진적이거나 영화적이기 이전에 회화적이고 문화적인─평범한 것의 영예다.(pp.42-44)&lt;BR&gt;&lt;BR&gt;평범한 것을 어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어떤 신화적 또는 환영적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 평범한 것을 그 명백함에서 떼어내면, 평범한 것은 참된 것의 흔적이 된다. 미학적 예술 체제에 속하는, 참된 것의 이러한 환영적 차원은 인문사회과학들의 비판적 패러다임의 구성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 상품을 그 사소한 외관에서 떼어내야 하고, 한 사회의 모순들에 대한 표현을 상품에서 읽기 위해 그 상품을 환영적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페티시즘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이에 대한 가장 돋보이는 증언이다.(p.46)&lt;BR&gt;&lt;/FONT&gt;&lt;BR&gt;&#039;예술에 속하는 것&#039;을 다루면 그것이 예술이든 기술이든 예술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다소 애매한 것은 예술적 범주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인데, 랑시에르는 &#039;뉴 헤이븐의 생선 파는 익명의 작은 여인&#039;과 같은, 즉 익명적 대상이자 평범한 대상의 구성이 곧 예술적 범주가 됨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amp;nbsp;그러나 이러한 지위 향상의 성립은 사진이 회화와는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회화에서 하지 않던 평범한 익명인을 미적 대상으로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039;독창성&#039;으로 말미암아 사진은 예술로서의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lt;BR&gt;&lt;BR&gt;랑시에르는 이렇게 확보된 평범한 대상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 또는 사실로서의 &#039;명백함&#039;을 떼어내면, 어떤 &#039;환영적 형상&#039;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평범함은 참됨 그 자체가 아니라 참됨의 &#039;흔적&#039;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되는 것이 예술적으로 성립된다는 것은 오랜 재현의 역사이지 않은가? 인문사회과학이 바로 이러한 점들을 비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표적인 예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드는 것이다. 상품을 상품 그 자체의 &#039;상품성&#039; 또는 &#039;상품으로서의 가치&#039;로 보지 않고 다른 가치를 투영시켜 보는 &#039;페티시즘&#039;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lt;BR&gt;&lt;BR&gt;자, 이제 나의 주변 상황을 둘러보자.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미디어아트는 어떠한가?&lt;BR&gt;내가 미디어아트를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2004년)의 상황과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는가?&lt;BR&gt;당시에 참조할 수 있는 문헌이나 작품들은 거의 미국과 유럽, 일본, 호주의 것들이었다.&lt;BR&gt;2003년에 번역되어 나온 마이클 러시의 &amp;lt;뉴미디어아트&amp;gt;가 미디어아트를 다루는 책의 전부인 것 처럼 보일 정도 였다.&lt;BR&gt;책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2004년~2007년 까지는 미디어아트를 비디오아트, 라이트아트, 옵아트, 전자예술(electronic art) 등과 같은 선(先)-디지털(pre-digital) 형태의 예술들로 보고, 보다 디지털적인 특성을 추구하며, 그에 따른 여러 첨단 디지털 기술들을 사용하는 예술을 &#039;뉴미디어아트&#039;라는 말로 쓰려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주로 새로운(novelty) 기술(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실험에&amp;nbsp; 치우친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 추구형 예술 형태는 어떤 획기적인 기술 발전 구현을 보여주는 몇몇 작품들─예를 들어, 그래픽 기술과 패턴인식 기술의 향상에 따른 최초의 상호작용적 예술을 보여줬던 마이론 크루거의 &amp;lt;Video Place&amp;gt;, 가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모순된 실재 속의 환영적 체험을 일으키는 어떤 상호작용을 체현하게 하려 했던 제프리 쇼의 &amp;lt;Legible City&amp;gt; 등─을 제외하면, 기술의 구현에 급급한 작품들은 잘 기억되지 않고, 스스로 사장되어 갔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로이 애스콧이나 사이먼 페니 처럼 어떤 미디어적 환경과 그에 따른 개념을 정초하면서 실행하는 예술적 실천들도 있었다. 내가 주로 경험한 국내의&amp;nbsp;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1차원적 상호작용성 구현과 디지털 기술의 구현 그 자체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니 기억되는 국내 작품들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lt;BR&gt;&lt;BR&gt;랑시에르가 &#039;기술혁명은 미학혁명 이후에 온다&#039;한 말을 적용하여, 미디어아트가 개념미술과 그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그런 전통을 잇고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어떤 예술 운동(movement)의 양상으로써 가히 &#039;혁명&#039;적인 것으로 본다면 지금 시대의 미디어아트는 복제 기술 이후의 새로운 &#039;기술 혁명&#039;이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도래한 디지털 기술 혁명을 과거의 기술 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누구나 쉽게 디지털 기기를 소유하고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039;정보&#039;의 생산 주체이자 소비 주체인 &#039;프로슈머&#039;라는 해석과 인터넷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는 것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정보가 권력과 자본에 복속되어 있고 그것에 격차(digital divide)가 있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소유할 수 있는 &#039;공기(air)&#039;처럼 100% 비물질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소소한 미디어아트는 예술적인 주제를 다루기만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039;스펙타클&#039;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아트는 그 어떤 예술 보다도 자본과 권력에 종속적인 경향이 있다. (삼성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이이남 작가나 12월 15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는 삼성 PAVV LED 주최/주관의 &#039;라이프 인 하이퍼리얼-미디어아트 프로젝트&#039;에 출품하는 박준범, 신기운, 정영훈 등의 작가들을 보면 그런 경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lt;BR&gt;&lt;BR&gt;이제 미디어아트는 TV와 영화 속에, 닌텐도 Wii나 DS와 같은 게임 속에, 박물관에 적용된 가시화기술 영상에, 큰 대로변의 미디어 폴(poll)과 건축물의 대형 LED 외관에, 나아가 좀 더 과장하여 말하자면, 그것이 미디어아트라는 속성을 가진 것임을 알자마자 쉽게 &#039;미디어아트&#039;라 말할 수 있는 일상적 대상이 되었다. 만약 아직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지라도, 그렇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결국 미디어 플랫폼의 홍수 속에 놓이게 될 것인데, 그런 환경이 마련된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일상화 되어 진부함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의 절벽 끝에서 매체들 속에서 &#039;익명적&#039;인 것에 의한 어떤 &#039;비자발적인 경험&#039;들을 안겨주어 그것이 곧 예술임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039;무엇을 할 것인가?&#039; 나아가 &#039;어떤 정치적 행동을 할 것인가?&#039; 그것이 앞으로 &#039;미디어아트 전공자&#039;로써 해결해야 할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039;정치&#039;는 어떤 권력이나 지위 획득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는 &#039;생명 정치&#039;에 관련된 것임을 밝혀둔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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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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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Dec 2009 21:31: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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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문학 입문서 - 주체란 무엇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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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lt;SPAN class=&quot;item vcard&quot;&gt;&lt;a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3362&amp;amp;ttbkey=ttbkh77771636001&amp;amp;paperid=3259421&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주체란 무엇인가&quot; hspace=5 src=&quot;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76823362_1.jpg&quot; align=left border=0&gt;&lt;/a&gt;&lt;A class=&quot;fn url&quot; style=&quot;FONT-WEIGHT: bold; COLOR: #369; TEXT-DECORATION: none&quot;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3362&amp;amp;ttbkey=ttbkh77771636001&amp;amp;paperid=3259421&quot; target=_blank&gt;주체란 무엇인가&lt;/A&gt; - &lt;IMG alt=10점 src=&quot;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quot; border=0&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818181&quot;&gt;이정우 지음/그린비&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SPAN class=description&gt;&lt;BR&gt;그린비에서 5권짜리 개념어총서 시리즈를 냈다.&lt;BR&gt;각각 재현, 권력, 공(空), 내재성, 주체 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책이다.&lt;BR&gt;분량도 적은 데다가 작고 아담한 포켓 사이즈라 휴대하면서 읽기에 안성맞춤이다.&lt;BR&gt;아마도 친절한 안내서로서 들고다니면서 자주 읽으면서 인문학과 친해지길 바라는 의도가 들어있는 듯 하다.&lt;BR&gt;*---&lt;BR&gt;지금 소개하는 책은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책 &amp;lt;주체란 무엇인가&amp;gt;이다.&lt;BR&gt;주체에 관한 여러 사유들을 아우름과 동시에 &quot;무위인&quot;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점이 흥미롭고, 어떤 촉발을 준다.&lt;BR&gt;&lt;BR&gt;주체성에 관한 여러 저작들에 대한 언급들 중에 유난히 들뢰즈의 &amp;lt;차이와 반복&amp;gt;이 눈에 띤다.&lt;BR&gt;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여러 학인들과 함께 무려 4달동안 힘겹게 스터디 했던 책이다. 중간에 두어 번 빼먹기도 한데다가 워낙 난해하기로 이름난 책이라 뭘 공부한 건지 가물가물 해졌지만 처음으로 두꺼운 철학서를 끝까지 읽고 이해해보려 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lt;BR&gt;&amp;lt;차이와 반복&amp;gt;에서 읽었던 몇몇 내용들이 &amp;lt;주체란 무엇인가&amp;gt;에서 요약식으로 &#039;시간의 수동적 종합&#039;과 같은 해설로 주체를 설명해내는 부분들이 어떤 명석함을 주는 듯도 하다. 주체란 무엇인가에서는 3장의 &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e4e4e4&quot;&gt;인식론적 역운&lt;/FONT&gt;&lt;/STRONG&gt;이 가장 흥미로워 기록해둔다.&lt;BR&gt;&amp;nbsp;&lt;BR&gt;&lt;STRONG&gt;&lt;FONT color=#ff7635&gt;진리가 오류로 둔갑할 때&lt;/FONT&gt;&lt;/STRONG&gt;&lt;BR&gt;원초적인 맥락에서의 인식이란 생물학적인 것이며 생존경쟁의 한 요소로서 작동한다. 인식하는 주체가 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자는 객체가 되며, 때문에 인식이란 &quot;먹느냐 먹히느냐&quot;라는 생물학적 현실의 인식론적 버전, 즉 &quot;인식하느냐 인식당하느냐&quot;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원초적인 맥락에서의 인식이란 결국 주체화와 객체화의 투쟁인 것이다. (...) 인식이란 주체, 의식, 언어, 수학, 현미경, 추론.... 등의 문제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생명의 문제이다. 주체가 될 것이냐 객체가 딜 것이냐, 이것이 인식의 원초적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본래 &#039;오류&#039;란 주체인 줄 알았던 존재가 어느 사이에 객체로 둔갑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오류란 상대를 잘못 인식했을 때 그것이 곧 자신의 상해를 뜻하는 심각한 상황을 함축하는 것이다. 오류의 상황에서, 주체는 자신이 객체화한 대상에 의해 결국 스스로 객체화된다. 주체-화는 이렇게 늘 그 등 뒤에 객체-화의 그림자를 돌려 준다. 변이해 가는 이율배반의 선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인식을 둘러싼 투쟁의 장, 주체화와 객체화의 전선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 전통 형이상학과 근대 과학의 인식이 드러낸 새로운 성격, 진리가 오류로 둔갑한 사건─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둔갑들 중 하나다&lt;SUP&gt;&lt;FONT color=#ff3399&gt;**&lt;/FONT&gt;&lt;/SUP&gt;─은 인식론적 역운의 두드러진 예이다.&lt;BR&gt;&lt;SUP&gt;&lt;FONT color=#ff3399&gt;**&lt;/FONT&gt;&lt;/SUP&gt;&lt;FONT style=&quot;FONT-SIZE: 11px&quot;&gt;다른 두 가지의 결정적인 둔갑이 더 존재한다. 그 하나는 물질적 풍요를 준다고 믿있던 자본주의가 거대한 불평등과 착취의 체계로 둔갑한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의 행복한 종말로 믿어졌던 민주주의/대중사회가 거대한 어리석음과 천박함의 도가니로 둔갑한 것이다.&lt;BR&gt;&lt;/FONT&gt;&lt;BR&gt;인류가 지각과 본능의 수준을 넘어 사물들을 인식하고 조작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 결정적인 단계로서 자신의 논리공간/추상공간 안에 사물들을 표상해 기하학적으로 변형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주체는 사물들을 객체화하며 스스로를 &lt;STRONG&gt;조작적 주체&lt;/STRONG&gt;로서 세웠다. 인간은 조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작된 객체가 이내 주체를 객체화하는 존재로 화한다. 객체성이 그것을 조작한 주체를 오히려 위협할 때 진리로부터 오류로의 둔갑이 일어나며, 자신이 인식/조작한 산물에 의해 조작자가 지배당하는 인식론적 역운이 일어난다.(pp.60-62)&lt;BR&gt;&lt;BR&gt;인식은 본래 어떤 집단의 문제이지만 그 결과는 이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특히 물질적 변화를 동반하는 조작적 인식의 경우 이런 영향은 두드러지며 강요의 성격을 띠게 된다. 기술적 변화는 모든 사람들의 승인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quot;디지털 사회가 도래했다&quot;, &quot;게놈 프로젝트가 완성에 가까워졌다&quot; 같은 말들이 신문을 장식하고, 사람들은 &quot;세상이 변하는구나&quot; 하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기획했던 자본주의적-기술적 주체들은 &lt;STRONG&gt;다른 주체들을 객체화해&lt;/STRONG&gt; 그들의 프로젝트에 복속시키려 한다. 이런 기도는 특히 TV, 신문, 영상, 인터넷을 비롯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lt;SUP&gt;&lt;FONT color=#ff3399&gt;**&lt;/FONT&gt;&lt;/SUP&gt;를 동원해 이루어진다. 다른 주체들은 이런 객체화에 복속되거나 일정 정도 저항한다.&lt;BR&gt;&lt;SUP&gt;&lt;FONT color=#ff3399&gt;**&lt;/FONT&gt;&lt;/SUP&gt;&lt;FONT style=&quot;FONT-SIZE: 11px&quot;&gt;대중매체와 대중문화는 대개의 경우 인식을 왜곡시킨다. 진정으로 뛰어난 책이 신문 서평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의학(더 정확히는 병원)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수시로 만들어지지만 생물학(자들)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보기 드물다. 영화 속의 과학은 대개 엉터리이다. 철학은 한 개인의 인생관/가치관으로 둔갑한다.&lt;/FONT&gt;&lt;BR&gt;&lt;BR&gt;&amp;nbsp;이런 일은 상당히 이론적인 수준을 갖춘 인식의 경우에서도 발생한다. 예컨대 진화론은 생명체에 관한 담론이지만, 그 자신 생명체인 인간이라는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던진다.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수정한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 담론에 대해 일정한 부정적 태도를 취한다. 세계관과 가치관을 둘러싼 &lt;STRONG&gt;&quot;신들의 전쟁&quot;&lt;/STRONG&gt;(막스베버)이 시작된다. 인식이란 만인의 지평에서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 이뤄지며, 그렇게 이뤄진 이후의 과정은 인식론적 과정이기보다 사회학적 과정이다(후자의 과정에는 대중매체와 대중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특정 집단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식이란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한 사건으로서 삶의 지평에 떨어진다.(pp.65-67)&lt;BR&gt;&lt;BR&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PAN class=&quot;reviewer vcard&quot;&gt;&lt;SPAN class=&quot;fn url&quot;&gt;http://www.kh7777.net/tt&lt;/SPAN&gt;&lt;/SPAN&gt;&lt;SPAN class=dtreviewed title=2009-12-10T07:24:56&gt;2009-12-10T07:24:56&lt;/SPAN&gt;&lt;SPAN class=version&gt;0.3&lt;/SPAN&gt;&lt;SPAN class=rating&gt;&lt;SPAN class=value&gt;10&lt;/SPAN&gt;&lt;SPAN class=best&gt;10&lt;/SPAN&gt;&lt;/SPAN&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독서는나의힘</category>
			<category>객체</category>
			<category>그린비</category>
			<category>이정우</category>
			<category>인식</category>
			<category>인식론</category>
			<category>인식론적역운</category>
			<category>주체</category>
			<category>주체란무엇인가</category>
			<category>주체화</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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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0 Dec 2009 16:25:01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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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커 발, 가야 실버만 (Mieke Bal, Kaja Silverman)</title>
			<link>http://kh7777.net/tt/entry/%EB%AF%B8%EC%BB%A4-%EB%B0%9C</link>
			<description>&lt;P&gt;네덜란드에 미커 발(Mieke Bal)이라는 존경스런 학자가 있다.&lt;BR&gt;지도교수님이 미커 발에 관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양말의 짝이 바뀐지도 모른 채 신고 다니며, 학문에 미친듯이 열정적으로 몰입되어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소실적에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셨단다.&lt;BR&gt;그러거나 저러거나 미커 발이 Kaja Silverman의 &amp;lt;기호학의 주체(The subject of Semiotics)&amp;gt;를 입술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quot;주체&quot;에 관해 논한 &amp;lt;On Meaning-Making&amp;gt;의 2부 5장의 글 &quot;Why I ?&quot;를 읽다가─&lt;FONT color=#8e8e8e&gt;3년전 랩세미나 때 어렵게 읽었던 글인데, 이 글을 갑자기 왜 꺼내서 또 다시 소화해 내지도 못한채 어렵게 읽고 있는지 모르겠지만&lt;/FONT&gt;─아무튼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이 글을 쓴다.&lt;BR&gt;&lt;BR&gt;홈페이지에 가보니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lt;BR&gt;(&lt;a href=&quot;http://www.miekebal.org/index.php?id=2&quot;  target=_blank&gt;http://www.miekebal.org/index.php?id=2&lt;/a&gt;)&lt;/P&gt;
&lt;BLOCKQUOTE&gt;Even as a child, my siblings teased me that I was always teaching. It&#039;s something I was born to do. But teaching, in my experience, is nothing like lecturing &#039;at&#039; people. It is communicative; sharing the excitement of discovering how things work. Also, disagreeing seemed almost a hobby; discussion a favourite pastime. Hence, I started to teach as soon as I could, and have done so at all levels, from middle school to high school, college, university, BA, MA and PhD.&lt;BR&gt;&lt;BR&gt;I always loved to focus, intensely and almost obsessively, yet I could never confine myself to a single discipline. I studied French first, then literary theory (focusing on narrative theory), and through the meanderings of my life ended up writing on the Hebrew Bible, baroque and contemporary art, cultural analysis, feminism, postcolonial thought. More recently, I have begun to make videos. First, videos on art experiences of other people; then, art films. Mostly, the videos circle around issues of migration culture.&lt;BR&gt;&lt;BR&gt;So, if you would like to know more, you are welcome to click on any of the links and find out about the books, videos, and PhD projects I am involved in. Each link provides extensive information. I hope you enjoy the site.&lt;BR&gt;&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 Mieke&lt;/DIV&gt;&lt;BR&gt;&lt;BR&gt;&lt;/BLOCKQUOTE&gt;어설프게나마 번역해 보면,&lt;BR&gt;&lt;BR&gt;&lt;FONT color=#177fcd&gt;&lt;FONT color=#009966&gt;어렸을 때 조차, 나는 항상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이 내 형제들이 나를 놀리며 조롱하는 거였다. 그것은 내가 그러도록 태어난 어떤 것 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서 보건데, 가르친다는 것은 사람들 &#039;에게&#039; 강의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통적인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했는지 발견하는 희열을 함께 하는 소통적인 것이다. 또한 &amp;nbsp;취미(토론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바로 가르치기를 시작했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단과대학, 종합대학, 학부, 석사, 박사에 이르는 거의 모든 단계들에서&amp;nbsp; 가르치고 있다.&lt;BR&gt;&lt;BR&gt;나는 항상 열정적이면서도 거의 강박적으로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하나의 학문에 내 스스로를 가두어둘 수 없었다. 나는 맨 처음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그리고 나서 (서사 이론에 집중된) 문학 이론을 공부했다. 그리고 삶의 구불구불한 길목을 지나오면서 히브리어로 된 성경 쓰기와 바로크 시대 예술, 현대 예술, 문화 비평, 페미니즘, 후기식민지 사상 등의 [공부를] 끝마쳤다. 보다 최근에, 나는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예술 경험이 있는 비디오들; 그리고 나서, 예술 영화들. 최근에, [나의] 그 비디오 [작업]들은 이주 문화의 이슈들을 아우르고 있다.&lt;BR&gt;&lt;BR&gt;자, 당신이 [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거든, 당신은 링크들중 아무거나 눌러도 좋다. 그리고 책들, 비디오들, 내가 수행했던 Ph.D [시절의] 프로젝트들을을 찾아봐도 좋다. 각 링크들은 더 많은 정보들을 [보여] 줄 것이다. 사이트를 [마음껏] 즐기길 희망하며..&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FONT color=#009966&gt;&amp;nbsp;- 미커&lt;/FONT&gt;&lt;BR&gt;&lt;/DIV&gt;&lt;/FONT&gt;&lt;/FONT&gt;&lt;BR&gt;&quot;Why I ?&quot;를 읽으며 도발적이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여하간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여류 학자이다. 홈페이지에는 이런 모습으로 올라와 있다.&lt;BR&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www.miekebal.org/file.php?id=191&quot; border=0&gt;&lt;/P&gt;여하간 미커 발은 &quot;Why I ?&quot;에서 Kaja Sinverman이 쓴 &amp;lt;기호학의 주체&amp;gt;를 기존의 양대 산맥급 텍스트들을 뒤로 하고, 기호학 이론서의 새로운 교과서로 채택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할 정도로 강렬한 글을 썼다. 그러고 보니 Silverman이 최근에 &amp;lt;Flesh of My Flesh&amp;gt;라는 책을 냈는데,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다. 나중에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한번 쯤 꼭 읽고 싶다. 
&lt;FORM id=handleBuy style=&quot;MARGIN: 0pt&quot; name=handleBuy action=http://www.amazon.com/gp/product/handle-buy-box/ref=dp_start-bbf_1_glance method=post&gt;&lt;BR&gt;&lt;BR&gt;&lt;A onclick=&quot;return amz_js_PopWin(this.href,&#039;AmazonHelp&#039;,&#039;width=700,height=600,resizable=1,scrollbars=1,toolbar=0,status=1&#039;);&quot; href=&quot;http://www.amazon.com/gp/product/0804762074&quot; target=_blank&gt;&lt;IMG id=prodImage height=240 alt=&quot;Flesh of My Flesh&quot; src=&quot;http://ecx.images-amazon.com/images/I/41UYsSymHnL._SL500_AA240_.jpg&quot; width=240 onload=&quot;if (typeof uet == &#039;function&#039;) { uet(&#039;af&#039;); }&quot; align=left border=0&gt;&lt;/A&gt;책 설명이 영어로 나와 있는데 번역은 좀 귀찮고,&lt;BR&gt;그냥 나중에 읽어 볼 요량으로 그냥 긁어다만 놔야 겠다.&lt;BR&gt;앞문장만 얼핏 봐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키워드들이 금방 눈에 밟히긴 한다.&lt;BR&gt;여자란 무엇인가? 남자란 무엇인가? 그들은 서로 어떤 관련지어 지는가?에서 부터.. &quot;완전체(wholenss)&quot;니 &quot;자기 충만(self-sufficiency)&quot;이니...&lt;BR&gt;음... 쩝...&lt;BR&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cc9900&gt;Product description&lt;/FONT&gt;&lt;/STRONG&gt;&lt;BR&gt;What is a woman? What is a man? How do they—and how should they—relate to each other? Does our yearning for &quot;wholeness&quot; refer to something real, and if there is a Whole, what is it, and why do we feel so estranged from it? For centuries now, art and literature have increasingly valorized uniqueness and self-sufficiency. The theoreticians who loom so large within contemporary thought also privilege difference over similarity. Silverman reminds us that this is but half the story, and a dangerous half at that, for if we are all individuals, we are doomed to be rivals and enemies. A much older story, one that prevailed through the early modern era, held that likeness or resemblance was what organized the universe, and that everything emerges out of the same flesh. Silverman shows that analogy, so discredited by much of twentieth-century thought, offers a much more promising view of human relations. In the West, the emblematic story of turning away is that of Orpheus and Eurydice, and the heroes of Silverman&#039;s sweeping new reading of 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culture, the modern heirs to the old, analogical view of the world, also gravitate to this myth. They embrace the correspondences that bind Orpheus to Eurydice and acknowledge their kinship with others past and present. The first half of this book assembles a cast of characters not usually brought together: Friedrich Nietzsche, Sigmund Freud, Marcel Proust, Lou-Andréas Salomé, Romain Rolland, Rainer Maria Rilke, Wilhelm Jensen, and Paula Modersohn-Becker. The second half is devoted to three contemporary artists, whose works we see in a moving new light:Terrence Malick, James Coleman, and Gerhard Richter.&lt;BR&gt;&lt;/FORM&gt;</description>
			<category>독서는나의힘</category>
			<category>미커 발</category>
			<category>가야 실버만</category>
			<category>기호학</category>
			<category>주체</category>
			<category>Kaja Silverman</category>
			<category>Mieke Bal</category>
			<author>(날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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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Dec 2009 22:45:4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생명이란 무엇인가 (6)</title>
			<link>http://kh7777.net/tt/entry/%EC%83%9D%EB%AA%85%EC%9D%B4%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6</link>
			<description>&lt;HR SIZE=1 border=&quot;0&quot;&gt;
&lt;/ br&gt;&lt;FONT face=&quot;&#039;Gulim&#039;, Sans-serif&quot;&gt;블로그에 연재중인 &lt;INS&gt;생명이란 무엇인가&lt;/INS&gt; 라는 제목의 글들은 &lt;FONT color=#008000&gt;DNA발견이후 다시 쓰는 &amp;lt;진화론&amp;gt;&lt;/FONT&gt;이라는 부제가 붙은 &lt;STRONG&gt;&lt;FONT color=#008000&gt;《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lt;/FONT&gt; &lt;/STRONG&gt;(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지음 / 황현숙 옮김 / 지호 / 1999)라는 책을 읽으면서 공부겸 밑줄 긋고 정리하는 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lt;/FONT&gt;&lt;BR&gt;
&lt;HR SIZE=1 border=&quot;0&quot;&gt;
&lt;BR&gt;8장은 식물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꽤나 아슬아슬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lt;BR&gt;8장을 시작하는 페이지에 조르주 바타이유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인용되어 있다.&lt;BR&gt;&lt;BR&gt;&lt;FONT size=2&gt;
&lt;BLOCKQUOTE&gt;&lt;FONT size=2&gt;누군가 내 책을 다 읽어 내려갈 인내를, 그리고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이성의 법칙에 따라 수행된 연구가 여기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또한 거기에서 하나의 확실한 주장을 발견할 것이다. &lt;U&gt;시간 속에서의 성행위는 공간 속에서의 호랑이와도 같다는 것을. 이러한 비교는 시적 환상의 여지가 없는 에너지의 경제학적 고찰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이다.&lt;/U&gt;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계산과는 상반되는 힘의 작용,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에 기초한 힘의 작용과 동일한 수준에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이러한 진리가 모습을 나타내는 시각은 그 속에서 보다 보편적인 다음의 명제, 즉 &quot;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들이미는 것은 필요성이 아니라 그 정반대인 사치이다&quot;라는 명제가 그 의미를 띠게 되는 시각이다. 정신의 자유는 (...) 지구의 생물 자원으로부터 유래하고, 그것으로 즉시에 모든 것이 해결된다. 모든 것은 부이다.&lt;BR&gt;- 조르주 바타이유&lt;/FONT&gt;&lt;/BLOCKQUOTE&gt;&lt;/FONT&gt;뭔가 알듯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이 글이 쉽게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 속에 멤도는 이유는 뭘까?&lt;BR&gt;마굴리스는 바타이유의 이 글을 &#039;태양의 경제학&#039;에 비유하여 설명해낸다. 거시적으로 어떤 통찰을 주는 동시에 생물권의 한 개체 생물이기도 하며, &#039;만물의 영장&#039;이라는 오랜 전통이 머물러 있는 인간에게 오해를 통해 훨씬 더 오만한 무기를 쥐어줄 수 있는 여지도 있는 듯 하여 섬세한(?) 사유가 필요할 듯 하다.&lt;BR&gt;&lt;BR&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163245740.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449&quot; width=&quot;600&quot; /&gt;&lt;/div&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c9edff&quot; color=#006699 size=2&gt;[8] 햇빛의 변환&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affa9&quot; color=#ff7635&gt;녹색 불꽃&lt;BR&gt;&lt;/FONT&gt;&lt;/STRONG&gt;모든 생물의 성장과 행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궁극적인 원천은 태양이다. 광합성 생물은 차가운 녹색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햇빛을 자기의 몸으로 바꾼다. 원생생물(고골편모충류, 규조류, 해조류)이 바다에서의 주된 변환자라면 녹색 식물은 육지에서의 주된 변환자이다.&lt;BR&gt;식물은 박테리아의 공진화가 도달한 높은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생물권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지표면에서 수백 미터 상공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식물은 이 유서 깊은 광합성 길드 조직에서는 아직 신참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겨우 지난 4억 5천만 년 정도 지상에 거주했을 따름이다. 조류에서 진화한 식물은(거의가 육상에서만 사는 생물) 대륙을 푸르게 바꾸어 나갔다.(p.280)&lt;BR&gt;&lt;BR&gt;식물은 인간의 환경에 너무나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어 이제는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이다. 우리는 기다란 줄기의 장미꽃 다발이나 초콜릿 상자가 현관 앞에 놓여 있는 게 아닌 이상, 식물은 그저 눈앞에 있는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때조차도 우리는 식물 그 자체가 아니라 식물 제품이 가진 상징들에 주목할 뿐이다.&lt;BR&gt;식물은 우리에게 놀라우리만큼 풍부한 볼거리와 냄새, 맛을 제공한다. 철따라 활짝 피어 향기를 풍기는 꽃은 야외 생활을 하는 열대 지방의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 언덕 위에서 출렁이는 논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는가.(pp.281-282)&lt;BR&gt;&lt;BR&gt;식물계의 알려진 9개 문(門) 가운데에서 꽃을 피우는 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문이 어찌나 다양하든지, 전체 식물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되어진다. 꽃식물(현화식물문)의 300과(科)에 속하는 모든 종을 전부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엄청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식물은 육상 최초의 &quot;녹색 불꽃&quot; 생물이 아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서남쪽 80km 부근의 암석에는 8억 년이나 된 화석 토양이 보존되어 있다. 그 토양의 탄소 내용물은 태고적 광합성 생물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미국 남서부의 또 다른 지점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북동쪽 130km 근방에서는 훨씬 더 오래된 화석 토양이 채집되었다. 이 표본은 육상에서의 광합성이 12억 년 이상 전에 시안 세균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보스턴 대학의 수잔 캠벨과 스티옙코 골루빅의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뉴올리언스 툴레인 대학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호로디시키와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지질학자 폴 나우스는 원생대 말기에 육지는 대량의 광합성 미생물로 뒤덮여 있었다고 주장한다. (pp.282-284)&lt;BR&gt;&lt;BR&gt;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미생물 선조로부터 생겨났다. 식물은 광합성을 물려받았지만, 반드시 광합성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식물은 잎과 열매가 달여 있어도 녹색 불꽃으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눈이 없어진 땅 속의 뒤지처럼 일부 종의 흰색 식물은 햇빛의 의존에서 벗어났다. 예를 들어 너도밤나무의 뿌리에 기생하는 열당과 식물이나 구상난풀은 숙주인 숲의 푸른 나무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사를 통해 얻은 양분으로 살아간다.&lt;BR&gt;그러므로 식물을 구별짓는 특징은 광합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 모두가 생활사의 어느 단계에서는 포자로부터 생장하고 다른 단계에서는 배(胚)로부터 생장한다는 점이다. 자성 조직 깊숙이에서 발견되는 식물의 배는 성적 결합에 의해 생긴 이배체(二倍體)이다. (...) 식물의 배는 자성 기관(장란기)에 있는 난자와 웅성 번식체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나, 식물의 난자나 정자는 감수 분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식물의 배는 수그루의 화분관이나 헤엄치는 정자가 암그루나 암수한그루의 자성 부분에 침투했을 때 만들어진다. 이들 어린 암그루는 반수체로 모친의 반수체 조직에 파묻혀 있던 반수체 포자로부터 생장한다. 배가 자라서 된 식물은 배우자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배체에서 감수 분열하여 포자를 만든다. 이 포자가 자라 각기 웅성과 자성 반수체인 어린 식물이 되고, 그게 감수 분열 없이 배우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pp.284-286)&lt;BR&gt;&lt;BR&gt;전체적으로 보면 식물과 동물은 유성 생식에 의해 배를 만드는 생물로 다른 세 생물계(원핵생물, 원생생물, 균류)보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동물은 단세포 반수체의 단계를 지닌 이배체인 데 반해, 식물은 다세포 반수체 단계를 지닌다. 그리고 동물 세포와는 달리, 모든 식물 세포는 시안 세균이 남긴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p.287)&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affa9&quot; color=#ff7635&gt;저주 받은 역할&lt;BR&gt;&lt;/FONT&gt;&lt;/STRONG&gt;조르주 바타이유는 호랑이를 포유동물 생활사의 출발점인 성교와 연관시켰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이런 비유가 합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진화의 전체적인 전개는 태양에서 파생한 에너지가 늘어남으로써 생긴 수출 할 수 없는 잉여분에 대한 반응이다. 성교와 호랑이는 생물권의 복잡성이다.&lt;BR&gt;성교는 행동이고 호랑이는 생물이지만, 이 둘은 식물이 가진 막대한 적립금의 두 가지 운명을 나타내고 있다. 호랑이는 태양 에너지에 기초한 지구상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정점에 위치한다. 쉬고 있을 때 조차도 호랑이는 생명의 먹이 사슬의 맨 가장자리, 즉 육식의 극한을 나타낸다. 블레이크의 기억할 만한 문장에서 &quot;밝게 불타는&quot; 호랑이는 태양 에너지가 아주 특이하고 잠재적이며 무시무시한 형태로 집중되는 것을 나타낸다. 성교는, 태양과 식물에서 나온 부(富)를 동물이 더 많은 자손을 만드는 데 소비하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바타이유는 고전 경제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 경제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태양의 것이다. 태양에 의해 생성된 음식물이나 섬유, 석탄, 석유 같은 탄소 및 에너지가 풍부한 매장물은 부산한 동물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산업, 기술, 국가의 발전을 위한 기초이다.(p.288)&lt;BR&gt;&lt;BR&gt;바타이유는 한 사회의 특성은 피룡에 의해서보다 잉여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된다고 파악했다. 부는 생물학적이나 문화적 영역 둘 다에서 자유를 창조한다. 옛 유럽에 대한 향수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금욕에 대한 경의, 이집트의 풍요로움에 대한 경탄은 은연중에 한 문화가 그 구성원들이 잉여분을 어떻게 소비하거나 축적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에서 나온 감상이다. 고대 로마는 콜로세움과 대성당을 만들고, 미국은 맥도널드와 디즈니랜드를, 그리고 이집트는 스핑크스가 지키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p.289)&lt;BR&gt;&lt;BR&gt;인류는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다. 소유권은 생물권에 있다. 수표, 신용 카드, 지폐, 주식 증서는 모두 그 출처가 인류의 기술적인 생산 수단을 초월한 부의 상징일 뿐이다. 화폐 경제는 지구의 경제에 태양이 축적해 준 부를 억류하려고 시도한다. 통화는 광합성에 의한 생물 에너지를 다른 무언가(사람에 의해 통제 및 조작이 가능하고 축적될 수 있는 무엇)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미국의 지폐가 녹색인 것은 아마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lt;BR&gt;생물학적 현실인 태양의 경제에서 우리들 개개인 모두는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처분되는 신세이다. 대부받은 우리 몸의 탄소와 수소, 질소는 생물권의 은행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p.290)&lt;BR&gt;&lt;BR&gt;먹고 배설하는 생물과는 달리, 생물권은 자기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생물권의 재료는 한정되어 있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써도 소모되지 않는다. 광합성에 의해 만ㄷ루어진 섭취와 이용이 가능한 풍부한 잉여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른 생물을 잡아 먹는 포식자나 남은 양분을 청소하는 청소부 생물을 만들어 냈다. 생물권의 물질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녹색 식물로 변환되는 태양 광선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lt;BR&gt;전체적으로 광합성 활동은 생물에 저장되거나 성장을 위해 섭취되거나 아니면 그대로 낭비되는, 에너지 풍부한 잉여 물질을 만들어낸다. 막대한 양의 지구의 부는 언제라도 쓸 수 있으며 없어진 부분은 활발한 태양 에너지의 전환으로 보충된다. 지구를 처음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소망은 공감은 가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들이 돌아가길 원하는 원시의 자연은 영원 불변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조를 지구상에 넘쳐나도록 훌륭히 부양해 준 바로 그 녹색 세계이다. 게다가 우리를 부양해 온 녹색 환경을 인류가 망치고 있다는 사실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위협하는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어떤 생물 종도 나머지 모든 종을 위협할 순 없었다. 어느 한 종이 지나치게 성장하여 자연 환경을 파괴하려 하면 나머지 모든 종이 그것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lt;U&gt;&quot;자연 선택&quot;의 본질은 어느 한 개체군의 무한히 성장하려는 경향이 환경을 파괴하는 지점에 이르면 다른 개체군의 성장에 의해 멈춰지게 된다는 점이다.&lt;/U&gt; 인구의 팽창도 이 법칙에 따른다. 환경이 쇠퇴하면 질병 발생률이 증가하고 인간의 사망률이 높아져 결국에는 멸종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pp.291-292)&lt;BR&gt;&lt;BR&gt;인간이 연소시키는 화석 연료는 식물에 의해 이용된다. 식물은 그 연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자신의 몸에 동화시킨다. 물론 이것이 오늘날 산업화된 인간의 생활 양식이 위험하지 않다거나 지구의 온난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 생물에 의해 폐기물이 잉여물로 전환되는 일은 이미 생물권에서 전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구를 불모화시키기는커녕 한 생물이 내놓는 폐기물은 실제로 다른 생물을 위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lt;BR&gt;기묘한 태양의 경제에서는 개체가 죽으면 그 몸의 구성 성분을 생물권의 순환으로 되돌려 보낸다. 몸에서 사용된 화학 물질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물은 바타이유가 &quot;저주받은 몫&quot;이라고 이름붙인, 광합성에서 파생된 그 끊임없는 잉여분을 이용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p.292)&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affa9&quot; color=#ff7635&gt;고대의 뿌리&lt;BR&gt;&lt;/FONT&gt;&lt;/STRONG&gt;최초의 식물은 아마도 오늘날의 선태식물과 비스했을 것이다. 솔이끼, 우산이끼, 붕어마름 등은 다른 식물문에 있는 수직 구조물(목질부)이 없는데, 이는 액체의 수송과 수압을 지지해 주는 관속이 없기 때문이다. 축축한 표면을 좋아하는 녹색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다시피한 선태식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잎과 뿌리와 종자가 없다.&lt;BR&gt;오르도비스기 끝무렵, 지표면은 거칠었고 지면 가까이 사는 시안 세균과 토양 조류가 살고 있었지만 식물은 없었다. (...) 육상 생물이 식물보다 앞섰다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 유타 주의 사막 같은 지각과 고비 사막, 이라크의 평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지각은 시안 세균을 비롯한 박테리아와 때로는 조류, 균류로 구성된다. 이들 모두는 수분만 주어지면 빠르게 광합성이라는 녹색 불꽃 운동을 시작한다.&lt;BR&gt;오늘날의 일부 녹조류는 식물의 조상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의 엽록체는 식물의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색소와 동일한 엽록소 a와 b를 함유한다. 서로 아주 다른 식물인 이끼류와 양치류의 정자 꼬리처럼, 이들 녹조류 세포도 두 개의 파동모를 지닌다.(...) 유사 세포 분열과 식물의 셀룰로오수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세포벽은 일부 녹조류가 상상속의 식물 조상과 닮았음을 시사한다.(pp.293-294)&lt;BR&gt;&lt;BR&gt;식물의 다양성은 대부분 단단한 줄기와 통도 조직을 가진 유관속 식물에서 볼 수 있다. 이들 생물은 말 그대로 자라난다. 가령, 속새는 공기중으로 솟아나온 최초의 생물 가운데 하나였다. 광합성을 하는 줄기에 실리카(이산화규소)를 코함하는 속새는 한때 벌 주는 도구로 쓰였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정착민들은 이것으로 항아리나 냄비를 문질러 닦았다. 그러나 실리카로 뻣뻣해진 이들 식물은 오늘날의 후손들보다 과거에 훨씬 더 크게 자랐다. 4억 1천만 년 전 데본기의 원시 숲에서 살던 과거의 속새는 14m 높이까지 뻗어 올라갔다.(p.296)&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affa9&quot; color=#ff7635&gt;태고의 나무&lt;BR&gt;&lt;/FONT&gt;&lt;/STRONG&gt;라이니아류의 식물은 현존하거나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많은 종류로 진화했다. 고대의 유관속 식물은 아마도 원시 나자식물을 발생시켰을 것이다. 멸종한 이 계통으로부터 열대의 종자고사리류가 나왔고 이것이 나중에 꽃식물로 진화했다. (...) 원시적인 라이니아류의 유관속 식물은 또한 은행나무, 포자를 방출하는 고사리류, 속새류, 솔잎란류로 갈라졌다. 이처럼 최초의 줄기 생성자가 가진 여러 재간이 갈라져 나가 세상을 수풀과 숲으로 뒤덮었다.(pp.297-298)&lt;BR&gt;&lt;BR&gt;아마도 종자를 만든 최초의 식물이었을 소철양치류는 공룡 시대보다 앞선 3억 4천 4백만 년에서 2억 2천 5백 년 사이에 번성했다. 그들이 최초의 숲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 데본기가 끝나고 석탄기가 시작될 무렵인 3억 6천만 년 전 지구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시기의 석탄은 모두 질긴 잎과 두터운 뿌리, 비늘잎이 달린 나무껍질로 채워져 있다. (...) 속 이상의 분류 단계를 대량으로 잃은 2억 4천 5백만 년 전의 페름-트라이아스기에 있었던 대멸종은 공룡을 전멸시킨 백악기 말의 사건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 페름-트라이아스기 멸종의 주된 특징은 빙하의 확산과 장기간 지속된 심한 추위였을 것이다. 아마 이 빙하기는 혜성이나 운석의 충돌로 생긴 파편들이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하늘을 뒤덮어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일어났을 것이다.(pp.299-300)&lt;BR&gt;&lt;BR&gt;소철양치류의 묘목과 나무는 살을 에는 추위에 약했다. 그러나 모든 소철양치류가 멸종되기 전에 그들 선조 중의 적어도 하나쯤은 강추위에 견딜 수 있는 식물(침엽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침협수 화석은 꽃식물(현화식물) 화석보다 더 오래되었다. 침엽수의 종자 화석은 자성 구과의 비늘(인편) 아래쪽에 부풀어오른 부분으로 알 수 있다.(p.301)&lt;BR&gt;&amp;nbsp;&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affa9&quot; color=#ff7635&gt;꽃의 설득&lt;BR&gt;&lt;/FONT&gt;&lt;/STRONG&gt;구과(방울 열매)를 만드는 겉씨식물과 달리, 꽃식물은 종자가 감싸여 있는(이는 꽃의 씨방이 자라 열매가 된 결과이다) 속씨식물이다. 지구상에는 25만 종이 넘는 꽃식물이 살고 있다. 속씨식물은 배를 지니며 변형된 자성 기관이 그 배를 감싼다.&lt;BR&gt;우리 영장류의 선조는 아프리카의 꽃을 피우는 나무 위에서 살면서 때로 그 열매를 먹고 살았다. 열매는 다채로운 빛깔과 향기 같은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성질을 진화시켜 동물이 그들의 번식에 협력하도록 유혹했다. 포유류는 종자를 퍼뜨리고 배설을 통해 속씨식물의 싹이 틀 토양을 기름지게 만든다. 현재의 인류와 닮은 비교적 가까운 조상은 더 이상 나무 위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민첩한 손과 두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경치(생물계에 걸친 또 다른 창조물)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lt;BR&gt;사바나는 또한 대형 초식 동물이 이룩한 창조물이기도 하다. 그들이 끝부분에서 자라는 풀 이외의 광엽 초본과 어린 나무를 뜯어 먹어 치움으로써 아래에 있던 풀들이 자연 석택으로 살아 남았다. 그러나 사바나는 재생자, 즉 원생생물과 박테리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대형 초식 포유류의 비대해진 앞창자나 뒤창자에서 공진화하면서 셀룰로오수를 소화했던 것이다.(pp.302-303)&lt;BR&gt;&lt;BR&gt;찰스 다윈은 꽃의 기원을 &quot;진저리나는 수수께끼&quot;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꽃과 종자의 화석은 꽃식물이 적어도 1억 2천 4백만 년 전의 백악기 중반에 북반구의 중위도 지방에서 출현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꽃식물은 나중에 석탄이 된, 꽃을 피우지 않는 습지의 거대한 나무들의 마지막 시기인 약 6천만 년에 걸쳐 진화하며 퍼져나갔던 것이다.(...)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꽃식물(특히 열대우림의 화려한 식물상)은 최근에 진화한 현상이다.(p.303)&lt;BR&gt;&lt;BR&gt;어떤 종의 식물은 인간과 깊은 상호의존 관계를 맺고 있어 더 이상 야생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한 친밀 관계의 생생한 예가 바로 옥수수이다.&lt;BR&gt;&lt;img src=&quot;http://kh7777.net/tt/attach/1/1374539469.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500&quot; /&gt;&lt;BR&gt;(이미지출처 : &lt;a href=&quot;http://plantfinder.sunset.com/sunset/plant-details.jsp?id=3016&quot;  target=_blank&gt;http://plantfinder.sunset.com/sunset/pl &amp;middot;&amp;middot;&amp;middot; d%3D3016&lt;/a&gt;)&lt;BR&gt;&lt;BR&gt;사람들은 매년 가장 달고 수확량이 많은 종자를 선택하는 강단한 방법으로 옥수수를 완전히 인간에 의존적인 식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옥수수는 사람이 손이나 농기계로 수확해서 껍질을 벗기고 씨를 심어 주지 않으면 번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도움 없이는 섬유질 껍질로 뒤덮여 파묻혀 있는 낟알이 싹을 틔울 수 없는 것이다.&lt;BR&gt;녹색 혁명은 생물권의 입장에서 보면 꽃식물의 크나큰 성공담이다. 열을 지어 버섯 정원을 돌보는 잎꾼개미처럼 인간의 재능과 자원(가축, 화석 연료로 움직이는 트랙터, 비료, 관개 시설, 생명 공학 기기)은 우리가 좋아하는 식물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쏟아부어져 왔다. 꽃식물의 세계에서 진화한 영장류의 두뇌는 지금도 여전히 그 초록의 은혜로운 세계를 보호하고 확장시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속씨식물에 대한 우리의 이끌림은 뿌리 깊고도 본능적이다. (p.305)&lt;BR&gt;&lt;BR&gt;식물은 동물을 이용하여 자손을 퍼뜨린다. 우리는 포도를 먹고 씨를 내뱉음으로써 그 식물을 퍼뜨리는 것이다. 과일 속에 든 쓰디쓴 씨나 단단한 핵은 만약 그것이 지능을 가진 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quot;영리한&quot;이라는 형용사가 붙었을 법도 하다. (...) 생물권에서 공존하는 많은 생물의 관계가 밀접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서, 움직이지 못하고 근육도 뇌도 없는 식물이 흔히 그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동물과 구분시키는 바로 그 끊임없이 활동적인 땅(지각)의 힘을 이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공생이 생물 계통수의 가지를 교차시키듯이, 식물의 번식과 동물의 감각과 미각의 합병은 시너지 효과와 수렴을 가져오는 생명의 중요한 힘을 보여준다. 생물은 경쟁하고 투쟁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연합하여 같이 협력한다.(p.306)&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affa9&quot; color=#ff7635&gt;태양의 경제학&lt;BR&gt;&lt;/FONT&gt;&lt;/STRONG&gt;지성을 과시하는 우리는 과일나무와 곡식류를 지구상에 퍼뜨리고 다녔던 조니 애플시드(각지에 사과 묘목을 분양해 주고 다녔다는 미국 개척 시대의 전설적 인물/옮긴이)이다. 지금까지의 어떤 동물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광합성의 힘을 개발함으로써 우리는 지구상 생물의 이익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태양의 경제는 인간과 함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피터 비토섹은 위성 사진을 분석하여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은 지표 면적의 40%가 농경지라고 추정했다. 경작할 수 있는 땅에서 경작되지 않고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p.307)&lt;BR&gt;&lt;BR&gt;화석 연료와 에너지가 공장이나 기계 생산, 축산과 농업에 통합됨에 따라 더 많은 식물과 동물, 미생물이 발달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 소모되고, 진화적인 과학 혁신은 살충제, 폴리염화비닐, 스티로폼, 레이온, 라텍스 도료 등 새로운 생물권의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기간 매장되어 있던 에너지 자원을 연소시켜 나온 기체 부산물은 지구 생리의 복잡한 시스템을 교란시키거나 원상 회복이 불가능하게 바꾼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중에 축적된다.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이 기체는 가시광선은 통과시키고 반사열은 붙잡아 두어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어쩌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 또한 벌목과 개간은 일부 종을 직접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생활 공간을 파괴함으로써 많은 종의 멸종을 함께 가져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종이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광합성에서 나온 것이다. 좋든 싫든, 새로운 것이든 예전 그대로이든, 자연은 태양의 불꽃에 의해 힘을 부여받는다. 폭룍을 위한 에너지 역시 식물로부터 나온다.(pp.307-308)&lt;BR&gt;&lt;BR&gt;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한 이래로 식물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었다. (...) 식물은 언제나 우리의 생물권 여행에 동행한다. 태양을 향하는 식물이 피우는 꽃은 평화, 삶, 아름다움, 희망, 여성다움, 그리고 태양을 상징한다. (...) 생명애를 고양시키는 꽃은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마음의 약이다. 그러나 꽃식물을 비롯한 모든 식물은 단순한 장식품에 그치지 않는다. 식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들의 자손은 우리의 자손과 함께 있을 것이다.(p.308)&lt;BR&gt;&lt;BR&gt;&lt;BR&gt;&lt;EM&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e4e4e4&quot;&gt;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lt;/FONT&gt;&lt;BR&gt;&lt;/STRONG&gt;생명은 태양 광선의 변환이다. 그것은 광합성 생물의 녹색 불꽃이 된 태양의 에너지와 물질이다.&lt;BR&gt;또한 꽃이라는 자연의 유혹이다.&lt;BR&gt;생명은 한밤중의 정글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온기이다.&lt;BR&gt;(...)&lt;BR&gt;이들 생물은 화석으로 원시의 태양 황금을 보관했으며,&lt;BR&gt;저장된 부는 아주 최근에서야 이간이 만든 태양 경제의 도가니에 방출되었다.&lt;BR&gt;그러나 이 모든 변환의 방향에는 결국에는 식물의 자기 생산적 위기를 에워싸는 고리가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lt;BR&gt;우리가 지적인 생명체일지는 모르나&lt;BR&gt;그 지능 자체는 현재 우리가 광합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에 의존한다.&lt;BR&gt;생명이 태양의 불꽃을 생물권의 모든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lt;BR&gt;우리는 살아 있는 식물의 교묘한 즉위에 경의를 표한다.&lt;/EM&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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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8 Dec 2009 19:47: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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