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

2007/03/29 15:56 / 일상을말하다
내가 어렸을 때 여섯 명의 이모가 있었다.
첫째, 셋째, 넷째이모, ... 그리고 막내이모.
둘째 이모는 우리 엄마인 셈이다.

막내이모는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 바쁘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이내 컴퓨터가 잘 안된다고 또는 한글 워드에서 뭔가 잘 안된다고 물어보곤 했다.
어제도 그렇게 바쁘냐는 물음의 전화가 걸려왔다.
늘 그랬듯이 이모에게 나는 한번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는 그런 조카다.

나는 또 뭔가 잘 안되는게 있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없이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적지 않은 떨림이 섞인 목소리에 영돈이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말이 실려왔다.

영돈이는 큰 이모의 막내아들이고, 내 어린시절 향수와 같은 추억을 함께한 사촌동생이다.
엄마가 한참 뇌질환 지병으로 누워계시던 시절, 큰 이모도 같은 병으로 쓰러지셨고,
뒤이어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엄마도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셨다.
어찌보면 영돈이와 나는 비슷한 경험의 소유와 비슷한 처지여서 좀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다쳤냐는 나의 물음은 더이상 소용없는 질문이 되어버리고,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한마디로 되돌아왔다.
그 순간 나의 모든 바쁜 일정은 그 효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다음날 저녁 시간을 택해 나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먼저 상주로 자리잡고 있는 형이 나온다.
눈물이 났다. 형이 손에 붙들려 조문을 마치고, 옆의 하객실로 갔다.
방의 한쪽 구석에 거무잡잡한 피부와 깡 마르고 주름진 얼굴의 이모부가 계시다.
서러움과 슬픔과 측은함과 억울함과 허무와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린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시 이모부를 끌어안고 울먹였다.
흐르던 눈물이 멎을 때 쯤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런 멍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으로 그날 밤과 새벽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뤘다.
조문을 하면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편안하게 하나님의 품안에 가기를 기도드렸었는데,
한 1년전부터 제수씨와 함께 성당에 다녔고, 영성체도 받았다고 한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어 화장터로 향했다. 제수씨의 결정에 따라 화장한 후 납골하기로 했다고 한다.
관이 그 뜨거운 불 속으로 아스라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의 세상이 무너질 듯 슬픈 이별을 택해야 하는 식구들의 힘겨움도 처음이다.
몇 번이나 실신하기를 반복하는 제수씨도, 땅바닥에 주저않은 채 힘겨운 눈물을 쏟아내는 이모부의 모습도,
주변의 모든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의 모습들 모두 힘겨움의 연속이다.
그런 가운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내 자신도 역시 힘들기는 매 한가지였다.

나는 이러한 감정의 풍경들을 뒤로 한 채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라섰다.

이제 갓 서른인 동생이 그렇게 갔다.
언제 부턴가 바빠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진 녀석이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 뭐하나, 죽으면 끝인걸...' 이라는 말이 입에 붙은 듯 떠들면서도
나는 또 하루를 이렇게 바쁘게 살고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7/03/29 15:56 2007/03/29 15:56
Posted by 날개.
TAGS ,

Trackback URL : http://kh7777.net/tt/trackback/20


Leave your greetings here.

« Previous : 1 : ... 160 : 161 : 162 : 163 : 164 : 165 : 166 : 167 : 168 : ... 184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