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느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워가며 책을 뒤적거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독자를 아는 자라면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한심한 독자들의 시대가 한 세기 더 지속되기라도 한다면 넋조차도 악취를 풍기게 되리라.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배워 읽을 수 있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쓰는 것은 물론 생각까지 부패하기 마련이다.  한때는 넋이 신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사람이 되더니 지금은 심지어 친민이 되고 말았다.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그저 읽히기를 바라지 않고 암송되기를 바란다.

  (중략)

너희들은 말한다.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너희들은 어찌하여 오전에 긍지를 갖다가도 저녁에 이르러서는 체념 하는가?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을 삼가라!
우리 모두는 짐깨나 질 수 있는 귀여운 암수 나귀가 아닌가.

우리는 한 방울 이슬이 떨어졌다 하여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장미 꽃봉오리와 어떤 점에서 같은가?
그렇다. 삶에 친숙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속에는 얼마간의 광기가 있기 마련이다. 광기 속에는 얼마간의 이성이 있기 마련이고.
삶을 사랑하는 내게도 나비와 비누방울이 그리고 나비와 비누방울과 같은 자들이 행복에 관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 경쾌하고 어리숙하며 사랑스러운 그리고 발랄한 작은 영혼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부르게 된다.

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리고 나의 악마 이야긴데 나는 그가 엄숙하며, 심각하고, 심오하며 당당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력의 악령이었던 것이다. 저 악마로 인해 모든 사물은 나락으로 떠어지고 만다.
사람들은 노여움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살해를 한다.
자, 저 중력의 악력을 죽이지 않겠는가!

나는 걷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줄곧 달렸다.
나는 나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이제 나는 가볍다. 나는 날고 있으며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야 어떤 신이 내 몸 속에서 춤을 추고 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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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9 12:27 2007/05/09 12:27
Posted by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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