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연재중인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글들은 DNA발견이후 다시 쓰는 <진화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지음 / 황현숙 옮김 / 지호 / 1999)라는 책을 읽으면서 공부겸 밑줄 긋고 정리하는 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8장은 식물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꽤나 아슬아슬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8장을 시작하는 페이지에 조르주 바타이유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인용되어 있다.

누군가 내 책을 다 읽어 내려갈 인내를, 그리고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이성의 법칙에 따라 수행된 연구가 여기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또한 거기에서 하나의 확실한 주장을 발견할 것이다. 시간 속에서의 성행위는 공간 속에서의 호랑이와도 같다는 것을. 이러한 비교는 시적 환상의 여지가 없는 에너지의 경제학적 고찰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계산과는 상반되는 힘의 작용,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에 기초한 힘의 작용과 동일한 수준에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이러한 진리가 모습을 나타내는 시각은 그 속에서 보다 보편적인 다음의 명제, 즉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들이미는 것은 필요성이 아니라 그 정반대인 사치이다"라는 명제가 그 의미를 띠게 되는 시각이다. 정신의 자유는 (...) 지구의 생물 자원으로부터 유래하고, 그것으로 즉시에 모든 것이 해결된다. 모든 것은 부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뭔가 알듯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이 글이 쉽게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 속에 멤도는 이유는 뭘까?
마굴리스는 바타이유의 이 글을 '태양의 경제학'에 비유하여 설명해낸다. 거시적으로 어떤 통찰을 주는 동시에 생물권의 한 개체 생물이기도 하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랜 전통이 머물러 있는 인간에게 오해를 통해 훨씬 더 오만한 무기를 쥐어줄 수 있는 여지도 있는 듯 하여 섬세한(?) 사유가 필요할 듯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 햇빛의 변환

녹색 불꽃
모든 생물의 성장과 행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궁극적인 원천은 태양이다. 광합성 생물은 차가운 녹색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햇빛을 자기의 몸으로 바꾼다. 원생생물(고골편모충류, 규조류, 해조류)이 바다에서의 주된 변환자라면 녹색 식물은 육지에서의 주된 변환자이다.
식물은 박테리아의 공진화가 도달한 높은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생물권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지표면에서 수백 미터 상공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식물은 이 유서 깊은 광합성 길드 조직에서는 아직 신참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겨우 지난 4억 5천만 년 정도 지상에 거주했을 따름이다. 조류에서 진화한 식물은(거의가 육상에서만 사는 생물) 대륙을 푸르게 바꾸어 나갔다.(p.280)

식물은 인간의 환경에 너무나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어 이제는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이다. 우리는 기다란 줄기의 장미꽃 다발이나 초콜릿 상자가 현관 앞에 놓여 있는 게 아닌 이상, 식물은 그저 눈앞에 있는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때조차도 우리는 식물 그 자체가 아니라 식물 제품이 가진 상징들에 주목할 뿐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놀라우리만큼 풍부한 볼거리와 냄새, 맛을 제공한다. 철따라 활짝 피어 향기를 풍기는 꽃은 야외 생활을 하는 열대 지방의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 언덕 위에서 출렁이는 논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는가.(pp.281-282)

식물계의 알려진 9개 문(門) 가운데에서 꽃을 피우는 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문이 어찌나 다양하든지, 전체 식물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되어진다. 꽃식물(현화식물문)의 300과(科)에 속하는 모든 종을 전부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엄청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식물은 육상 최초의 "녹색 불꽃" 생물이 아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서남쪽 80km 부근의 암석에는 8억 년이나 된 화석 토양이 보존되어 있다. 그 토양의 탄소 내용물은 태고적 광합성 생물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미국 남서부의 또 다른 지점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북동쪽 130km 근방에서는 훨씬 더 오래된 화석 토양이 채집되었다. 이 표본은 육상에서의 광합성이 12억 년 이상 전에 시안 세균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보스턴 대학의 수잔 캠벨과 스티옙코 골루빅의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뉴올리언스 툴레인 대학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호로디시키와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지질학자 폴 나우스는 원생대 말기에 육지는 대량의 광합성 미생물로 뒤덮여 있었다고 주장한다. (pp.282-284)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미생물 선조로부터 생겨났다. 식물은 광합성을 물려받았지만, 반드시 광합성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식물은 잎과 열매가 달여 있어도 녹색 불꽃으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눈이 없어진 땅 속의 뒤지처럼 일부 종의 흰색 식물은 햇빛의 의존에서 벗어났다. 예를 들어 너도밤나무의 뿌리에 기생하는 열당과 식물이나 구상난풀은 숙주인 숲의 푸른 나무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사를 통해 얻은 양분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식물을 구별짓는 특징은 광합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 모두가 생활사의 어느 단계에서는 포자로부터 생장하고 다른 단계에서는 배(胚)로부터 생장한다는 점이다. 자성 조직 깊숙이에서 발견되는 식물의 배는 성적 결합에 의해 생긴 이배체(二倍體)이다. (...) 식물의 배는 자성 기관(장란기)에 있는 난자와 웅성 번식체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나, 식물의 난자나 정자는 감수 분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식물의 배는 수그루의 화분관이나 헤엄치는 정자가 암그루나 암수한그루의 자성 부분에 침투했을 때 만들어진다. 이들 어린 암그루는 반수체로 모친의 반수체 조직에 파묻혀 있던 반수체 포자로부터 생장한다. 배가 자라서 된 식물은 배우자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배체에서 감수 분열하여 포자를 만든다. 이 포자가 자라 각기 웅성과 자성 반수체인 어린 식물이 되고, 그게 감수 분열 없이 배우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pp.284-286)

전체적으로 보면 식물과 동물은 유성 생식에 의해 배를 만드는 생물로 다른 세 생물계(원핵생물, 원생생물, 균류)보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동물은 단세포 반수체의 단계를 지닌 이배체인 데 반해, 식물은 다세포 반수체 단계를 지닌다. 그리고 동물 세포와는 달리, 모든 식물 세포는 시안 세균이 남긴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p.287)

저주 받은 역할
조르주 바타이유는 호랑이를 포유동물 생활사의 출발점인 성교와 연관시켰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이런 비유가 합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진화의 전체적인 전개는 태양에서 파생한 에너지가 늘어남으로써 생긴 수출 할 수 없는 잉여분에 대한 반응이다. 성교와 호랑이는 생물권의 복잡성이다.
성교는 행동이고 호랑이는 생물이지만, 이 둘은 식물이 가진 막대한 적립금의 두 가지 운명을 나타내고 있다. 호랑이는 태양 에너지에 기초한 지구상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정점에 위치한다. 쉬고 있을 때 조차도 호랑이는 생명의 먹이 사슬의 맨 가장자리, 즉 육식의 극한을 나타낸다. 블레이크의 기억할 만한 문장에서 "밝게 불타는" 호랑이는 태양 에너지가 아주 특이하고 잠재적이며 무시무시한 형태로 집중되는 것을 나타낸다. 성교는, 태양과 식물에서 나온 부(富)를 동물이 더 많은 자손을 만드는 데 소비하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바타이유는 고전 경제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 경제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태양의 것이다. 태양에 의해 생성된 음식물이나 섬유, 석탄, 석유 같은 탄소 및 에너지가 풍부한 매장물은 부산한 동물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산업, 기술, 국가의 발전을 위한 기초이다.(p.288)

바타이유는 한 사회의 특성은 피룡에 의해서보다 잉여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된다고 파악했다. 부는 생물학적이나 문화적 영역 둘 다에서 자유를 창조한다. 옛 유럽에 대한 향수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금욕에 대한 경의, 이집트의 풍요로움에 대한 경탄은 은연중에 한 문화가 그 구성원들이 잉여분을 어떻게 소비하거나 축적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에서 나온 감상이다. 고대 로마는 콜로세움과 대성당을 만들고, 미국은 맥도널드와 디즈니랜드를, 그리고 이집트는 스핑크스가 지키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p.289)

인류는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다. 소유권은 생물권에 있다. 수표, 신용 카드, 지폐, 주식 증서는 모두 그 출처가 인류의 기술적인 생산 수단을 초월한 부의 상징일 뿐이다. 화폐 경제는 지구의 경제에 태양이 축적해 준 부를 억류하려고 시도한다. 통화는 광합성에 의한 생물 에너지를 다른 무언가(사람에 의해 통제 및 조작이 가능하고 축적될 수 있는 무엇)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미국의 지폐가 녹색인 것은 아마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생물학적 현실인 태양의 경제에서 우리들 개개인 모두는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처분되는 신세이다. 대부받은 우리 몸의 탄소와 수소, 질소는 생물권의 은행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p.290)

먹고 배설하는 생물과는 달리, 생물권은 자기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생물권의 재료는 한정되어 있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써도 소모되지 않는다. 광합성에 의해 만ㄷ루어진 섭취와 이용이 가능한 풍부한 잉여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른 생물을 잡아 먹는 포식자나 남은 양분을 청소하는 청소부 생물을 만들어 냈다. 생물권의 물질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녹색 식물로 변환되는 태양 광선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전체적으로 광합성 활동은 생물에 저장되거나 성장을 위해 섭취되거나 아니면 그대로 낭비되는, 에너지 풍부한 잉여 물질을 만들어낸다. 막대한 양의 지구의 부는 언제라도 쓸 수 있으며 없어진 부분은 활발한 태양 에너지의 전환으로 보충된다. 지구를 처음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소망은 공감은 가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들이 돌아가길 원하는 원시의 자연은 영원 불변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조를 지구상에 넘쳐나도록 훌륭히 부양해 준 바로 그 녹색 세계이다. 게다가 우리를 부양해 온 녹색 환경을 인류가 망치고 있다는 사실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위협하는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어떤 생물 종도 나머지 모든 종을 위협할 순 없었다. 어느 한 종이 지나치게 성장하여 자연 환경을 파괴하려 하면 나머지 모든 종이 그것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의 본질은 어느 한 개체군의 무한히 성장하려는 경향이 환경을 파괴하는 지점에 이르면 다른 개체군의 성장에 의해 멈춰지게 된다는 점이다. 인구의 팽창도 이 법칙에 따른다. 환경이 쇠퇴하면 질병 발생률이 증가하고 인간의 사망률이 높아져 결국에는 멸종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pp.291-292)

인간이 연소시키는 화석 연료는 식물에 의해 이용된다. 식물은 그 연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자신의 몸에 동화시킨다. 물론 이것이 오늘날 산업화된 인간의 생활 양식이 위험하지 않다거나 지구의 온난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 생물에 의해 폐기물이 잉여물로 전환되는 일은 이미 생물권에서 전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구를 불모화시키기는커녕 한 생물이 내놓는 폐기물은 실제로 다른 생물을 위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
기묘한 태양의 경제에서는 개체가 죽으면 그 몸의 구성 성분을 생물권의 순환으로 되돌려 보낸다. 몸에서 사용된 화학 물질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물은 바타이유가 "저주받은 몫"이라고 이름붙인, 광합성에서 파생된 그 끊임없는 잉여분을 이용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p.292)

고대의 뿌리
최초의 식물은 아마도 오늘날의 선태식물과 비스했을 것이다. 솔이끼, 우산이끼, 붕어마름 등은 다른 식물문에 있는 수직 구조물(목질부)이 없는데, 이는 액체의 수송과 수압을 지지해 주는 관속이 없기 때문이다. 축축한 표면을 좋아하는 녹색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다시피한 선태식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잎과 뿌리와 종자가 없다.
오르도비스기 끝무렵, 지표면은 거칠었고 지면 가까이 사는 시안 세균과 토양 조류가 살고 있었지만 식물은 없었다. (...) 육상 생물이 식물보다 앞섰다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 유타 주의 사막 같은 지각과 고비 사막, 이라크의 평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지각은 시안 세균을 비롯한 박테리아와 때로는 조류, 균류로 구성된다. 이들 모두는 수분만 주어지면 빠르게 광합성이라는 녹색 불꽃 운동을 시작한다.
오늘날의 일부 녹조류는 식물의 조상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의 엽록체는 식물의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색소와 동일한 엽록소 a와 b를 함유한다. 서로 아주 다른 식물인 이끼류와 양치류의 정자 꼬리처럼, 이들 녹조류 세포도 두 개의 파동모를 지닌다.(...) 유사 세포 분열과 식물의 셀룰로오수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세포벽은 일부 녹조류가 상상속의 식물 조상과 닮았음을 시사한다.(pp.293-294)

식물의 다양성은 대부분 단단한 줄기와 통도 조직을 가진 유관속 식물에서 볼 수 있다. 이들 생물은 말 그대로 자라난다. 가령, 속새는 공기중으로 솟아나온 최초의 생물 가운데 하나였다. 광합성을 하는 줄기에 실리카(이산화규소)를 코함하는 속새는 한때 벌 주는 도구로 쓰였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정착민들은 이것으로 항아리나 냄비를 문질러 닦았다. 그러나 실리카로 뻣뻣해진 이들 식물은 오늘날의 후손들보다 과거에 훨씬 더 크게 자랐다. 4억 1천만 년 전 데본기의 원시 숲에서 살던 과거의 속새는 14m 높이까지 뻗어 올라갔다.(p.296)

태고의 나무
라이니아류의 식물은 현존하거나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많은 종류로 진화했다. 고대의 유관속 식물은 아마도 원시 나자식물을 발생시켰을 것이다. 멸종한 이 계통으로부터 열대의 종자고사리류가 나왔고 이것이 나중에 꽃식물로 진화했다. (...) 원시적인 라이니아류의 유관속 식물은 또한 은행나무, 포자를 방출하는 고사리류, 속새류, 솔잎란류로 갈라졌다. 이처럼 최초의 줄기 생성자가 가진 여러 재간이 갈라져 나가 세상을 수풀과 숲으로 뒤덮었다.(pp.297-298)

아마도 종자를 만든 최초의 식물이었을 소철양치류는 공룡 시대보다 앞선 3억 4천 4백만 년에서 2억 2천 5백 년 사이에 번성했다. 그들이 최초의 숲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 데본기가 끝나고 석탄기가 시작될 무렵인 3억 6천만 년 전 지구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시기의 석탄은 모두 질긴 잎과 두터운 뿌리, 비늘잎이 달린 나무껍질로 채워져 있다. (...) 속 이상의 분류 단계를 대량으로 잃은 2억 4천 5백만 년 전의 페름-트라이아스기에 있었던 대멸종은 공룡을 전멸시킨 백악기 말의 사건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 페름-트라이아스기 멸종의 주된 특징은 빙하의 확산과 장기간 지속된 심한 추위였을 것이다. 아마 이 빙하기는 혜성이나 운석의 충돌로 생긴 파편들이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하늘을 뒤덮어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일어났을 것이다.(pp.299-300)

소철양치류의 묘목과 나무는 살을 에는 추위에 약했다. 그러나 모든 소철양치류가 멸종되기 전에 그들 선조 중의 적어도 하나쯤은 강추위에 견딜 수 있는 식물(침엽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침협수 화석은 꽃식물(현화식물) 화석보다 더 오래되었다. 침엽수의 종자 화석은 자성 구과의 비늘(인편) 아래쪽에 부풀어오른 부분으로 알 수 있다.(p.301)
 
꽃의 설득
구과(방울 열매)를 만드는 겉씨식물과 달리, 꽃식물은 종자가 감싸여 있는(이는 꽃의 씨방이 자라 열매가 된 결과이다) 속씨식물이다. 지구상에는 25만 종이 넘는 꽃식물이 살고 있다. 속씨식물은 배를 지니며 변형된 자성 기관이 그 배를 감싼다.
우리 영장류의 선조는 아프리카의 꽃을 피우는 나무 위에서 살면서 때로 그 열매를 먹고 살았다. 열매는 다채로운 빛깔과 향기 같은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성질을 진화시켜 동물이 그들의 번식에 협력하도록 유혹했다. 포유류는 종자를 퍼뜨리고 배설을 통해 속씨식물의 싹이 틀 토양을 기름지게 만든다. 현재의 인류와 닮은 비교적 가까운 조상은 더 이상 나무 위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민첩한 손과 두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경치(생물계에 걸친 또 다른 창조물)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사바나는 또한 대형 초식 동물이 이룩한 창조물이기도 하다. 그들이 끝부분에서 자라는 풀 이외의 광엽 초본과 어린 나무를 뜯어 먹어 치움으로써 아래에 있던 풀들이 자연 석택으로 살아 남았다. 그러나 사바나는 재생자, 즉 원생생물과 박테리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대형 초식 포유류의 비대해진 앞창자나 뒤창자에서 공진화하면서 셀룰로오수를 소화했던 것이다.(pp.302-303)

찰스 다윈은 꽃의 기원을 "진저리나는 수수께끼"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꽃과 종자의 화석은 꽃식물이 적어도 1억 2천 4백만 년 전의 백악기 중반에 북반구의 중위도 지방에서 출현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꽃식물은 나중에 석탄이 된, 꽃을 피우지 않는 습지의 거대한 나무들의 마지막 시기인 약 6천만 년에 걸쳐 진화하며 퍼져나갔던 것이다.(...)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꽃식물(특히 열대우림의 화려한 식물상)은 최근에 진화한 현상이다.(p.303)

어떤 종의 식물은 인간과 깊은 상호의존 관계를 맺고 있어 더 이상 야생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한 친밀 관계의 생생한 예가 바로 옥수수이다.

(이미지출처 : http://plantfinder.sunset.com/sunset/pl ··· d%3D3016)

사람들은 매년 가장 달고 수확량이 많은 종자를 선택하는 강단한 방법으로 옥수수를 완전히 인간에 의존적인 식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옥수수는 사람이 손이나 농기계로 수확해서 껍질을 벗기고 씨를 심어 주지 않으면 번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도움 없이는 섬유질 껍질로 뒤덮여 파묻혀 있는 낟알이 싹을 틔울 수 없는 것이다.
녹색 혁명은 생물권의 입장에서 보면 꽃식물의 크나큰 성공담이다. 열을 지어 버섯 정원을 돌보는 잎꾼개미처럼 인간의 재능과 자원(가축, 화석 연료로 움직이는 트랙터, 비료, 관개 시설, 생명 공학 기기)은 우리가 좋아하는 식물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쏟아부어져 왔다. 꽃식물의 세계에서 진화한 영장류의 두뇌는 지금도 여전히 그 초록의 은혜로운 세계를 보호하고 확장시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속씨식물에 대한 우리의 이끌림은 뿌리 깊고도 본능적이다. (p.305)

식물은 동물을 이용하여 자손을 퍼뜨린다. 우리는 포도를 먹고 씨를 내뱉음으로써 그 식물을 퍼뜨리는 것이다. 과일 속에 든 쓰디쓴 씨나 단단한 핵은 만약 그것이 지능을 가진 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영리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었을 법도 하다. (...) 생물권에서 공존하는 많은 생물의 관계가 밀접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서, 움직이지 못하고 근육도 뇌도 없는 식물이 흔히 그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동물과 구분시키는 바로 그 끊임없이 활동적인 땅(지각)의 힘을 이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공생이 생물 계통수의 가지를 교차시키듯이, 식물의 번식과 동물의 감각과 미각의 합병은 시너지 효과와 수렴을 가져오는 생명의 중요한 힘을 보여준다. 생물은 경쟁하고 투쟁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연합하여 같이 협력한다.(p.306)

태양의 경제학
지성을 과시하는 우리는 과일나무와 곡식류를 지구상에 퍼뜨리고 다녔던 조니 애플시드(각지에 사과 묘목을 분양해 주고 다녔다는 미국 개척 시대의 전설적 인물/옮긴이)이다. 지금까지의 어떤 동물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광합성의 힘을 개발함으로써 우리는 지구상 생물의 이익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태양의 경제는 인간과 함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피터 비토섹은 위성 사진을 분석하여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은 지표 면적의 40%가 농경지라고 추정했다. 경작할 수 있는 땅에서 경작되지 않고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p.307)

화석 연료와 에너지가 공장이나 기계 생산, 축산과 농업에 통합됨에 따라 더 많은 식물과 동물, 미생물이 발달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 소모되고, 진화적인 과학 혁신은 살충제, 폴리염화비닐, 스티로폼, 레이온, 라텍스 도료 등 새로운 생물권의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기간 매장되어 있던 에너지 자원을 연소시켜 나온 기체 부산물은 지구 생리의 복잡한 시스템을 교란시키거나 원상 회복이 불가능하게 바꾼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중에 축적된다.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이 기체는 가시광선은 통과시키고 반사열은 붙잡아 두어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어쩌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 또한 벌목과 개간은 일부 종을 직접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생활 공간을 파괴함으로써 많은 종의 멸종을 함께 가져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종이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광합성에서 나온 것이다. 좋든 싫든, 새로운 것이든 예전 그대로이든, 자연은 태양의 불꽃에 의해 힘을 부여받는다. 폭룍을 위한 에너지 역시 식물로부터 나온다.(pp.307-308)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한 이래로 식물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었다. (...) 식물은 언제나 우리의 생물권 여행에 동행한다. 태양을 향하는 식물이 피우는 꽃은 평화, 삶, 아름다움, 희망, 여성다움, 그리고 태양을 상징한다. (...) 생명애를 고양시키는 꽃은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마음의 약이다. 그러나 꽃식물을 비롯한 모든 식물은 단순한 장식품에 그치지 않는다. 식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들의 자손은 우리의 자손과 함께 있을 것이다.(p.308)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태양 광선의 변환이다. 그것은 광합성 생물의 녹색 불꽃이 된 태양의 에너지와 물질이다.
또한 꽃이라는 자연의 유혹이다.
생명은 한밤중의 정글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온기이다.
(...)
이들 생물은 화석으로 원시의 태양 황금을 보관했으며,
저장된 부는 아주 최근에서야 이간이 만든 태양 경제의 도가니에 방출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환의 방향에는 결국에는 식물의 자기 생산적 위기를 에워싸는 고리가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지적인 생명체일지는 모르나
그 지능 자체는 현재 우리가 광합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에 의존한다.
생명이 태양의 불꽃을 생물권의 모든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식물의 교묘한 즉위에 경의를 표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제 블로그를 Han RSS로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 
Posted by 날개.


Trackback URL : http://kh7777.net/tt/trackback/289


Leave your greetings here.

« Previous : 1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 284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