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비가 예상되는 주말' 이라는 일기예보가 신뢰 잃은 약속을 지키고만 토요일이었다.
바짓자락이 젖는다.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만큼이나 제법 묵직하게 젖어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쏟아지는 빗줄기들을 피해 딱 그 만큼의 거리를 걸었다. 내가 피해 걸은 것은 빗줄기 만은 아니었다.
머리 위로 길게 늘어지는 수천 수만의 빗방울들과 함께 우산 끝자락의 시야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오고가는 홍대 앞 수 많은 인파 들을 비집고 걸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토요일 오후를 걸어 상상마당에 다다랐다.
인디 락 페스티벌. 이런 공연이 딱히 싫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아니었나 보다.
어린아이 같은 절규가 들리지 않는 가사로 귀를 찢을 듯 했고, 굉음으로 신체를 뒤흔드는 진부한 테크닉은 마음을 찢는 것 같았다. 어떤 광란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1시간을 10분쯤 비워 둔 채 다시 빗속으로 나왔다. 길쭉한 빗줄기가 송송송 바람따라 가벼운 빗방울들의 흩날림으로 변해 있었다. 양 팔과 얼굴에 섬세하게 닿는 방울방울이 주는 느낌이 시원하고 상쾌해서 좋았다.
기다리고 있던 공연은 노름마치 페스티벌. 마음이 더 앞섰던 것이었을까? 티켓 확인도 안하고 7시를 향해 클럽 앞에 가서야 알았다. 공연은 7시반이었다는 걸.
남는 시간도 채우고 비오는 풍경도 만끽하기에는 모퉁이 카페가 제격이었다. 내게 공명처럼 일었던 어떤 그 향은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하게 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순간, 빼곡한 생각들을 채워넣느라 하루종일 텅 비워두었던 배가 고픔이 재빨리 지각됐다. 두 눈으로 메뉴판의 적당한 공간을 짚어 기억나지 않는 이름을 가진 샌드위치 하나를 추가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괜한 분위기에 커피향에나 취하려던 '나'와 주린 배를 채우고픈 욕망의 가면을 쓴 '나'를 동시에 지각하는 순간에 대한 빈웃음을 살짝 던지면서, 책을 폈다. 진한 향과, 고소한 질감과 읽을 수록 혼잡해지는 '미디어아트'로 30분을 꾹 눌러담고, 다시 클럽으로 향했다.
그리고 클럽에서는 2년만이게 되는 노름마치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길놀이와 비나리와 판굿으로 이어지는 도입부의 레파토리는 변함이 없었다. 레파토리와 함께 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마음 가득 담은 정성, 그리고 실력이다. 달라진 것은 반복되는 것 같은 레파토리 속에서 차이나는 경험을 얻는 나다. 이것은 첫 경험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첫 경험에서 무언지 잘 모르지만 이끌려가면서 물음의 순간을 던져야 했던 경험과 익숙하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가락의 리듬을 손끝, 발끝에 실을 수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써 누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러한 기쁨들은 이번 공연의 게스트로 만난 '고구려 밴드'의 소리들에서 다시 한번 피어났다.
판소리 창법처럼 뿜어내는 보컬의 목소리가 그리도 매력있게 들렸다. 가끔 '어색한 만남'으로 궁색한 소리를 들어야 했던 어떤 '퓨전'들과는 달리, 무언가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는 락음악 속의 우리 소리였다.
이런 역량을 가진 게스트들을 등장시킬 수 있는 노름마치의 공연, 그리고 작은 클럽 속의 무대. 그래서 나는 어느 공연들 보다도 노름마치의 클럽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주색만찬>, <개소리는 천하다>, <아우라지 뱃사공>을 들려준 '고구려 밴드'
반복되는 레파토리 속의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노름마치의 예술실험, 예술실천 속에 펼쳐지는 새로운 곡을 들려주는 순서다. 작년 호암아트홀 공연에서 첫 선을 보였던 <소낙비>와 관련있는 곡이다.
다양한 얼굴로 반복되는 두드림 속에서 어떤 분화들을 일으켜 소낙비에 까지 이르는지 온 몸이 다 젖도록 시원하게 소리비를 맞아 봄직 하다.

<타징>에 이어 실험정신 가득한 명품 소리 <소낙비>를 연주하는 '노름마치'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길놀이-비나리-판굿-게스트-솔로연주-실험곡연주-시나위' 라는 전체적인 맥락들이 적혀있는 인쇄물들을 보면서, '맨날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건 음악을 좀 안답시는 양반들이 현장에 직접 나서기가 귀찮거나 현장에 발을 딛더라도 그들과 함께 하는 마음, 그들의 음악을 들을 귀를 여는 마음을 접었을 때나 둘러대는 변명일 것이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명'이 일어나는 순간은 언제나 끝까지 함께 했을 때 뿐이다. 아울러 그런 공명의 순간에 접속되려면 역시 연주자가 혼신의 노력과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날의 공연을 채워줄 때 이다. 관객과 연주자는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한 껏 부풀은 만남의 순간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기나 긴 토요일을 푸른 새벽 속에 고이 접어 둘 수 있었다.
p.s) 김주홍과 노름마치 카페 : http://www.noreumma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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