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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란 무엇인가주체란 무엇인가 - 10점
이정우 지음/그린비

그린비에서 5권짜리 개념어총서 시리즈를 냈다.
각각 재현, 권력, 공(空), 내재성, 주체 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책이다.
분량도 적은 데다가 작고 아담한 포켓 사이즈라 휴대하면서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마도 친절한 안내서로서 들고다니면서 자주 읽으면서 인문학과 친해지길 바라는 의도가 들어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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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하는 책은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책 <주체란 무엇인가>이다.
주체에 관한 여러 사유들을 아우름과 동시에 "무위인"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점이 흥미롭고, 어떤 촉발을 준다.

주체성에 관한 여러 저작들에 대한 언급들 중에 유난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눈에 띤다.
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여러 학인들과 함께 무려 4달동안 힘겹게 스터디 했던 책이다. 중간에 두어 번 빼먹기도 한데다가 워낙 난해하기로 이름난 책이라 뭘 공부한 건지 가물가물 해졌지만 처음으로 두꺼운 철학서를 끝까지 읽고 이해해보려 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차이와 반복>에서 읽었던 몇몇 내용들이 <주체란 무엇인가>에서 요약식으로 '시간의 수동적 종합'과 같은 해설로 주체를 설명해내는 부분들이 어떤 명석함을 주는 듯도 하다. 주체란 무엇인가에서는 3장의 인식론적 역운이 가장 흥미로워 기록해둔다.
 
진리가 오류로 둔갑할 때
원초적인 맥락에서의 인식이란 생물학적인 것이며 생존경쟁의 한 요소로서 작동한다. 인식하는 주체가 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자는 객체가 되며, 때문에 인식이란 "먹느냐 먹히느냐"라는 생물학적 현실의 인식론적 버전, 즉 "인식하느냐 인식당하느냐"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원초적인 맥락에서의 인식이란 결국 주체화와 객체화의 투쟁인 것이다. (...) 인식이란 주체, 의식, 언어, 수학, 현미경, 추론.... 등의 문제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생명의 문제이다. 주체가 될 것이냐 객체가 딜 것이냐, 이것이 인식의 원초적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본래 '오류'란 주체인 줄 알았던 존재가 어느 사이에 객체로 둔갑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오류란 상대를 잘못 인식했을 때 그것이 곧 자신의 상해를 뜻하는 심각한 상황을 함축하는 것이다. 오류의 상황에서, 주체는 자신이 객체화한 대상에 의해 결국 스스로 객체화된다. 주체-화는 이렇게 늘 그 등 뒤에 객체-화의 그림자를 돌려 준다. 변이해 가는 이율배반의 선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인식을 둘러싼 투쟁의 장, 주체화와 객체화의 전선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 전통 형이상학과 근대 과학의 인식이 드러낸 새로운 성격, 진리가 오류로 둔갑한 사건─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둔갑들 중 하나다**─은 인식론적 역운의 두드러진 예이다.
**다른 두 가지의 결정적인 둔갑이 더 존재한다. 그 하나는 물질적 풍요를 준다고 믿있던 자본주의가 거대한 불평등과 착취의 체계로 둔갑한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의 행복한 종말로 믿어졌던 민주주의/대중사회가 거대한 어리석음과 천박함의 도가니로 둔갑한 것이다.

인류가 지각과 본능의 수준을 넘어 사물들을 인식하고 조작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 결정적인 단계로서 자신의 논리공간/추상공간 안에 사물들을 표상해 기하학적으로 변형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주체는 사물들을 객체화하며 스스로를 조작적 주체로서 세웠다. 인간은 조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작된 객체가 이내 주체를 객체화하는 존재로 화한다. 객체성이 그것을 조작한 주체를 오히려 위협할 때 진리로부터 오류로의 둔갑이 일어나며, 자신이 인식/조작한 산물에 의해 조작자가 지배당하는 인식론적 역운이 일어난다.(pp.60-62)

인식은 본래 어떤 집단의 문제이지만 그 결과는 이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특히 물질적 변화를 동반하는 조작적 인식의 경우 이런 영향은 두드러지며 강요의 성격을 띠게 된다. 기술적 변화는 모든 사람들의 승인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디지털 사회가 도래했다",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에 가까워졌다" 같은 말들이 신문을 장식하고, 사람들은 "세상이 변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기획했던 자본주의적-기술적 주체들은 다른 주체들을 객체화해 그들의 프로젝트에 복속시키려 한다. 이런 기도는 특히 TV, 신문, 영상, 인터넷을 비롯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동원해 이루어진다. 다른 주체들은 이런 객체화에 복속되거나 일정 정도 저항한다.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는 대개의 경우 인식을 왜곡시킨다. 진정으로 뛰어난 책이 신문 서평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의학(더 정확히는 병원)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수시로 만들어지지만 생물학(자들)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보기 드물다. 영화 속의 과학은 대개 엉터리이다. 철학은 한 개인의 인생관/가치관으로 둔갑한다.

 이런 일은 상당히 이론적인 수준을 갖춘 인식의 경우에서도 발생한다. 예컨대 진화론은 생명체에 관한 담론이지만, 그 자신 생명체인 인간이라는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던진다.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수정한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 담론에 대해 일정한 부정적 태도를 취한다. 세계관과 가치관을 둘러싼 "신들의 전쟁"(막스베버)이 시작된다. 인식이란 만인의 지평에서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 이뤄지며, 그렇게 이뤄진 이후의 과정은 인식론적 과정이기보다 사회학적 과정이다(후자의 과정에는 대중매체와 대중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특정 집단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식이란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한 사건으로서 삶의 지평에 떨어진다.(pp.65-67)

http://www.kh7777.net/tt2009-12-10T07:24:56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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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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