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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강렬한 사유를 던져주는 좋은 영화 한편을 만났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아킬레스와 거북이>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그리스 시대의 철학 이야기인 제논의 역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인 즉슨 세상에서 가장 발이 빠르다는 아킬레스가 알다시피 가장 발이 느린 거북이와 경주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한다. 아킬레스는 거북이 보다 10배나 더 빠르기 때문에 거북이보다 100미터 뒤에서 출발하도록 한다. 자 이제 경주를 시작해 보자. 아킬레스가 100미터 지점에 도달한 순간 거북이는 얼마나 갔을까? 10배가 느린 거북이는 겨우 10미터 밖에 못갔을 것이다. 자 다시 아킬레스가 지금 거북이가 있던 10미터 앞으로 더 가면, 거북이는 1미터를 더 갔겠지? 다시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있던 111미터 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북이는 111.1미터 지점에 있을테고, 다시 아킬레스가 111.1미터 지점에 오면 거북이는 111.11미터 지점에 있게 된다. 뭐 이런 식으로 라면 무한히 경주를 계속 하더라도 결국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항상 가장 미세한 만큼이라도 뒤쳐져 있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역설이란게 무엇이던가?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돼서 모순을 일으키지만 논리적으로만 그럴 뿐 실제 우리의 삶에는 어떤 커다란 힘을 발휘할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던가?

이 영화는 미술을 통해 예술에 대한 역설을 말하는 영화다.
미술에 재능을 보이던 한 부잣집 어린 아이가 점점 성장하여 죽을 때까지 예술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끝까지 역설적인 굵직한 사건들을 흩뿌리며 흘러간다.
영화에서는 재현의 역사를 반복하며 모사에만 그치고 마는 회화들을 한 컬렉터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비판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예술성을 문제 삼아 팔 가치가 떨어짐을 끊임없이 지적하여 손쉽게 그림을 얻고는 그 그림을 누군가에게 값을 매겨 팔고 혼자만 이득을 취한다. 결국 예술성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작품의 판매 가치는 별개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은 실제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감독은 예술가는 차라리 그런 걸 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렇게 중년이 되도록 형식적인 예술 실험들을 멈추지 않던 그는 아무리 그리고 또 그려도 도저히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아킬레스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에게 또 한번의 역설이 찾아온다. 죽음의 순간에 임박하여서라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 그에게 딸의 죽음이 찾아오고, 딸의 시체를 예술의 도구로 삼아 실험하던 그를 지켜보던 아내마저 떠나버리는 일이 생기고 만다. 그리고 그는 불타오르는 헛간 속에서 무언가를 그리며 죽음과도 진배없는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는 전신 화상으로 불구자가 된다. 그렇게 버려진 그에게 떠났던 아내가 다시 찾아오고 이후 그는 무한히 겨루어도 질 수 밖에 없었던 그 경주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된다.
아마도 그는 그 순간 인생의 말미에서나 깨달았을 것이다. 예술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금까지 자기가 해오던 그 모든 실험들이 다 예술이었음을... 그리고 자기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신도 신앙도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가운데 내 안에 있고 다른 이의 안에도 있는 것 이듯이 진정한 예술도 자기가 실천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어떤 체계에 의해서 그 존재가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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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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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호박 2009/06/16 19:04  Modify/Delete  Reply  Address

    생각을 낳게하는 영화한편을 보고오셨네욤~
    이런건 호박이랑 같이봐야하는건데 말입니다! 음음..

    >.< 피와 살이되는 맛난 저녁식사 하세욥!!!

    • 날개 2009/06/16 22:52  Modify/Delete  Address

      이걸 보러 간 건 아니었고, 그저 이 영화를 만났어요. PC에서요... ㅎㅎ
      국내개봉 했던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암튼 저에게는 이렇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영화가 참 좋은 것 같아요.

  3. Tping 2009/06/18 11:32  Modify/Delete  Reply  Address

    얼마전 예술작품 컬렉터의 전시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었어요.. 예술작품의 컬렉터와 예술가의 위치, 역할 등이 제 머리속을 한동안 맴돌고 있었지요. 날개님 글의 마지막 문장이 제 마음에 툭- 하고 떨어지네요. 동감입니다. 인생과 예술이 다 그러한 것 같습니다^^.

    • 날개 2009/06/19 11:15  Modify/Delete  Address

      삶을 사는 것이나 예술을 하는 것이나 자신의 욕망의 배치를 바꾸고 역량을 한껏 펼치며 산다는 게 간단한 거 같으면서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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