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지게 늦잠을 자고나서 맞이하는 주말 아침.
여느 일상과는 달리 유난히 추운 겨울울 나의 몸과 함께 잘 견디어 주고 있는 옷가지들을 깨끗하게 빨아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날입니다.
빨래통에 겹겹이 쌓인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돌려놓고는, 따끈한 사골국물과 밥으로 고픈 배를 채우며 TV를 켰습니다. 뉴스에서 용산 철거민들의 장례식이 355일 만에 치뤄진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작년 이 맘 때 YTN 동영상으로 용산 철거민들을 과잉 진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현장을 지켜보면서, 억울하고 분한 감정으로 잠을 못 이루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 분하고 억울하고 서글픈 감정들을 담고 있는 그 일이 제게는 그저 마음 뿐이었고, 그 참사 현장을 그저 동영상이나 사진 속의 이미지이거나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맞이하는 '움직이는 풍경'에 지나지 않게 대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이 일어납니다. 반성은 곧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마쳤다는 상쾌한 신호음을 보내주자, 얼른 빨래를 널어놓고는 현장을 향해 나갑니다.
신용산 역에서 내려 용산참사 현장으로 가보니, 이미 장례식이 끝난 듯 한가로웠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서울역광장에서 범국민장으로 치뤄진다고 들었던 것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니 영결식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가고 있었습니다.



서글픈 단조의 민중가요, 수많은 깃발들과 함께 모인 사람들 '움직이는 풍경' 속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과 감각 전체로 맞이하는 현장의 느낌은 참으로 달랐습니다. 무언가 생각이 발동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나왔고,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 처럼 큰 슬픔의 정서가 이따금씩 훽하고 밀려오곤 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갇힘'에서 발동하는 것일테지만, 제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수유너머R 식구들도 만났습니다. 약속도 없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렇게 만나지니 반가웠고, 슬픔의 정서도 금새 잊어버렸습니다.




다섯 분의 영정들을 모두 영구차에 모시자. 노제를 위해 용산참사 현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영구차 뒤를 이어 만장들이 따르고, 그 뒤에 깃발과 추모행렬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행렬이 시작될 때쯤 내릴 것 같았던 눈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또 하나의 서글픈 풍경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 때문이겠지만 눈송이 들이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울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용산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걸어서 갈 생각도 해보지 못하는 길을 함께 가니 갈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차량들과 행렬이 뒤섞여 중간에 자주 막히고 끊기고 하는 문제들이 있었는지, 추위에 떨면서 힘겹게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걸어갔습니다. 그래도 가는 도중 수유너머R의 선생님 한 분과 인사도 나누고 안면도 트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거의 도착할 때쯤 갑자기 행렬이 분주해지고 어수선 하게 된 사이 흩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연락처도 없고 해서 그냥 묵묵히 혼자서 가기로 했습니다.



참사 현장에 무대가 마련되고 몇가지 순서에 따라 노제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만장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었는데, 현장에 나오니 이렇게 하나하나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추모 행렬은 꽤나 길었습니다. 도로 위가 아니어도, 보도블럭위에선 사람들도 조용히 노제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겨우 참사 현장에 올 수 있었으니, 꽤나 긴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
오랜 시간을 추위에 떨며 걸어왔더니, 배도 고프고 몸도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내 몸을 대책 없이 힘들게 내버려 두진 않았나 하는 생각과 의식을 경건히 치뤄야 한다는 생각이 싸우기 시작했지만,
몸이 먼저였습니다. 길건너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뜨거운 국물로 언 몸을 녹이고 다시 왔습니다.

제법 굵은 눈이 수북히 쌓여가는 가운데 유가족의 마지막 인사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만신의 몸을 빌어 고인이 했다던 말이 "추워~ 추워~"라는 말씀을 전할 때 눈물이 왈콱 쏟아졌습니다.
아... 정말 얼마나 추웠을까요... 그 추운 겨울, 망루 속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며, 함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마지막 남은 보루를 지키기 위해 그 차가운 최루액을 무자비하게 살포하는 것을 다 견디며 싸우다가 결국 불에 타 죽고말았던...
그렇게 학살과 다름 없어 보이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도,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고인의 시체를 유린하여 부검하고, 냉동고에 지금껏 갇혀 있다가 이제서야 3일만에 치뤄져야 하는 장례를 치루게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눈물 겨웠습니다.
펑펑 내리는 눈과 함께 한참 동안이나 주룩주룩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크게 울고 나니, 이제 모란공원 장지로 향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10대의 버스에 유가족과 풍물패와 추모객들 등등 나누어 타고 출발을 한다고... 노제는 거기서 그렇게 마무리 되고, 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니, 아주 슬픈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슬픔의 정서가 가득했던 꿈...
죄송했던 마음도 함께 떠나 보내고, 억울하고 슬픈 감정도 어쩐지 정리가 될 것 같았는데,
그러면 몸도 마음도 개운할 것 같았는데...
그냥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인지 주말과 휴일 내내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아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 슬픈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이제 돌아가신 다섯 분 모두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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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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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몬스터 2010/01/13 14:43  Modify/Delete  Reply  Address

    현장에 함께 하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께 했습니다.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지점들이 제대로 풀렸으면 합니다.
    더불어 세상이 더 낮은 곳을 향하는 해가 되길 바라는데, 그저 바램일까 싶네요.

  3. 지후아타네호 2010/01/17 10:52  Modify/Delete  Reply  Address

    저도 현장에 가보지 못한 게 죄송스럽고 후회되네요.
    비록 장례식은 치뤘지만, 많은 난제들이 남아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나머지 문제도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군요...

  4. 초하(初夏) 2010/01/23 00:58  Modify/Delete  Reply  Address

    그 춥던, 그 눈 내리던 날에 현장에 계셨군요... ^&^
    덕분에 생생한 소식을 듣게 되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소문 들으셨을가요... 다음 주에 '제6차 동시나눔'을 시작합니다.
    관련 글은 아니지만, 엮인 글( http://chohamuseum.net/396 ) 보시고,
    동참을 부탁해요~~ ㅎ

    이번 주는 따듯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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